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습니다.
내심 '오늘은 제발 비 맞으면서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우의도 입지 않고 이미 흠뻑 젖은 고객님 네 분과 빗속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고객님, 대여용 우의라도 입으시죠"라고 말씀드리자 "이미 다 젖었어. 아니 기분 좋아서 일부러 적셨어. 허허"라고 답하셨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얼마 못 가 고객님 네 분의 분위기 속에 빨려 들었죠. 어릴 적 고향 친구분들인 고객님들께서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카트도로에 대자로 누워 비도 맞고 큰 소리도 치면서 다행히 몇 팀 없는 코스를 동네 마당처럼 뛰어 다니셨습니다. 아마 앞뒤 팀이 있었으면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셨겠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고객님들의 신나는 라운드에 방해꾼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해가 질 무렵 18홀 라운드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마지막 홀 세컨드 샷 지점 그린 앞에 넓은 해저드가 있어 코스 설명을 드리고 고객님 네 분이 티 샷을 마치는 것까지 본 뒤 카트로 이동해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한 분이 사라진 겁니다.
두리번거리며 연신 고객님을 찾았지만 금세 어두워진 코스에 고객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린으로 이동하는 길도 하나뿐인데 도대체 어디로 가신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그때 풍덩 소리와 함께 저는 "꺄~아~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죠. 말릴 새도 없이 해저드로 뛰어드신 고객님 때문이었습니다.
수영을 하면서 해저드를 건너오시고는 아무렇지 않게 터벅터벅 걸어오시는 고객님. 정말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고객님께서는 "나 수영 잘 한다"며 다른 골프장에서도 몇 번 경험이 있으신 것처럼 태연하게 말씀하셨지만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고객님의 퍼포먼스는 저의 캐디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장의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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