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물가전쟁을 벌이고 있는 정부가 식품이나 화장품의 유통기한을 늘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보자고 제안했다. 가구 같은 내구재를 빌려쓰는 대여산업을 키우자는 의견도 내놨다. 기름값을 잡기 위해 아예 기존 주유소보다 리터(ℓ)당 70원이 싼 '대안주유소'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실효성·타당성을 두고 논란도 뜨겁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유통기한 제도를 바꿔보자고 했다. 그는 "식품과 화장품 등은 유통기한이 하루만 지나도 버려져 그 비용이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는 문제가 있다"며 "불필요한 폐기 처분을 막기 위해 유통기한 표시 제도를 바꿔보자"고 말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우유 같은 식품이나 화장품의 유통기한은 그 이전까지 상태가 가장 좋다는 뜻이지 날짜가 지나면 버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면서 "불필요한 낭비를 초래하고 가격 상승 요인이 되는 유통기한 제도를 미국의 '베스트 비포(best before)' 제도와 같은 방식으로 바꿔보자는 게 장관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가공식품협회 등의 제안을 받아들여 보건복지부에 제도 손질을 의뢰했다. 복지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청과 함께 관련 제도 변경을 검토 중이다.
박 장관은 대여산업 활성화로 절약을 유도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가구 등 내구재를 비롯해 등산용 지팡이에 이르기까지 꼭 사서 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빌려쓰자는 얘기다.
같은 날 지식경제부도 기존 주유소보다 ℓ당 70원 이상 기름값이 싼 대안주유소 설립안을 공개했다. 공익단체와 공공기관, 대기업(사회적 공헌차원) 등이 공동출자해 운영하는 셀프주유소를 만들고, 무료 세차 등 불필요한 서비스는 없애 기름값의 거품을 뺀다는 구상이다.
정재훈 지경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정유사, 대리점, 주유소로 이어지는 석유시장 유통 단계를 줄여 원가를 절감하고, 소비자들에게 이를 가격 인하 형태로 돌려줘 시장 전반의 가격인하 붐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주유소의 10% 수준까지 대안주유소를 늘린다는 게 지경부의 계획이다. 전국에 1300여개의 대안주유소가 생긴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구상에 우려도 적지 않다. 유통기한 제도 변경으로 물가를 낮춰보자는 제안에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유통기한 제도 변경은 무엇보다 국민 건강을 염두에 두고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안주유소 설립안에 대한 주유소협회의 반발도 거세다. 협회 측은 "대안주유소를 만들겠다는 건 결국 정부가 가격 인하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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