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참할거면서” 제안서 접수장 나온 롯데 “왜?”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두 회사 모두 롯데에게 당한 것 같네요.”
대한통운 본 입찰 제안서 접수 마감 시한인 27일 오후 5시를 앞두고 벌어진 해프닝을 바라본 재계 관계자의 분석이다.
이날 마감을 20분여 앞두고 입찰 제안서를 제출한 포스코-삼성SDS 컨소시엄과 CJ그룹 관계자들은 남아 있던 롯데측 인사를 주목했다. 머뭇거리는 이들의 표정을 바라보니 ‘포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때 롯데 직원들이 접수처로 이동했다. 마감 5분여가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롯데도 제안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봤고, 언론들은 즉각 실시간으로 “대한통운 인수전에 3사 모두 제안서를 제출했다”고 속보를 냈다.
그런데 마감을 한 뒤 얼마 안돼 “롯데가 불참했다”는 정보가 흘러나왔다. 현장에 있던 매각 주관사 관계자가 “롯데 관계자들이 막판에 들어와 인사만 하고 제안서를 내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다. “정황상 그럴리 없다”며 미심쩍인 반응이었던 현장 보도진들이 즉시 롯데그룹 홍보실에도 사실 여부 통화를 시도했으나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인사만 했다”에서 “제안서는 제출했으되 ‘포기한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는 등 소문은 빠르게 확산됐다.
이래저래 답답한 30여분이 지난 뒤, 롯데그룹이 공식적으로 인수전에 불참했다고 확인해 주면서 진의가 가려졌다. 모든 이들의 맥을 빼놓은 발표였다.
기업 인수전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기 마련이고, 돌출행동도 있어왔던 게 사실이지만 이날 롯데의 행동은 주관사 뿐만 아니라 경쟁업체들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롯데측은 “직원들이 준비한 서류를 들고 매각 주관사까지 찾아가긴 했지만 제안서 제출 직전 참여하지 않기로 최종 입장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고민을 거듭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들은 롯데가 이미 불참을 결정지은 상태에서 현장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벌인 게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즉, 롯데가 사전에 미리 포기를 알리면 흥행성이 떨어져 대한통운 인수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탄(현금)이 많다고 알려진 롯데가 끝까지 인수전에 발을 걸쳐 놓으면 포스코-삼성전자 컨소시엄이나 CJ그룹이 계속 긴장을 갖고 인수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수·합병(M&A)에서 나름 이름값을 올렸던 롯데는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조연 취급을 받았다. 이런 대접도 억울한데 삼성의 참여로 대세론에 한층 더 힘을 얻은 포스코와 삼성의 버림을 받은 CJ그룹간 자존심 싸움으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은 더욱 약이 올랐을 터.
그렇다면 롯데가 쓸 수 있는 방법은 대한통운의 몸값을 올려 포스코와 CJ가 출혈경쟁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금을 많이 쓴 기업은 다음에 나올 매물을 인수할 힘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에 롯데는 자사가 인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기업에 더 많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롯데는 대한통운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지만 양사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치밀한 수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포스코와 CJ가 우세를 보인 것 같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두 기업은 롯데와의 심리전에서 한방 먹은 꼴”이라며 “양사 모두 롯데의 참여로 인해 예측한 가격대를 써냈기 때문에 속내는 매우 쓰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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