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김기범 성균관대 사회과학부(심리학) 교수는 기업이 창의적인 성과를 내려면 자유로운 근무환경이 필요한가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경직된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가 30여개국 심리학자들과 함께 참여한 연구성과가 최근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지에 실려 화제다. '경직된 문화와 유연한 문화의 차이(Differences Between Tight and Loose Cultures)'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33개 국가를 조사해 사회가 경직된 정도를 수치로 제시하고 개념이 불분명한 민족성이 아니라 생태적, 역사적, 사회적 배경들이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연구 결과는 대지진을 당한 일본인들의 침착한 대응을 단순히 '민족성'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의 '오해'를 훌륭하게 풀어준다. 김 교수는 "일본의 경우 역사적으로 반복된 자연재해로 인해 비교적 경직된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일사분란하게 통제에 따라야 그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규범과 엄격한 통제에 따르는 문화적 습관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민족성'이 아니라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거대한 자연재해가 '경직된 사회'를 만들어 냈고 그 결과가 질서정연한 시민의식으로 나타났다는 결론이다.
연구에 따르면 엄정한 사회규범을 가지고 있고 일탈행동에 대해 관용적이지 않은 '경직된 사회'에서는 강한 민족중심주의 성향이 나타난다. 경직된 사회는 더 많은 질서와 규범을 갖고 있고 범죄가 적다는 특징도 있다. 반면 사회규범이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고 일탈행위에 대해 관용적인 '유연한 사회'는 선택이 폭이 넓으며 질서와 규범이 적지만 범죄율은 높다.
섬나라가 아닌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의 문화경직도는 정확히 10. 33개국 가운데 5번째로 높았다. 8.6으로 측정된 일본보다도 높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상당히 많이 의식하면서 행동하는 경직된 사회"라고 설명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높은 인구밀도, 외침(外侵)의 역사, 부족한 천연자원 등을 꼽았다.
개인의 행동 영역을 겹치게 만드는 높은 인구밀도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만든다. 배려나 예절이 없으면 서로 불쾌한 상황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잦은 외세의 침략이 강력한 통치와 유교 문화를 만들어냈고 부족한 천연자원 역시 나눠쓰고 아껴써야 한다는 의식으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이처럼 부족한 상황이나 결핍된 환경이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양식을 결정한다며 경직된 사회와 유연한 사회 가운데 어떤 사회가 더 좋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과 일본처럼 경직된 사회는 창의성을 내세우기 어렵다"며 "이것이 미국처럼 유연한 사회에 비해 창의적 성과가 현저히 낮게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사회의 경직성은 국가의 발전 정도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자유로운 근무환경으로 창의성을 키우려는 기업들의 노력처럼 생각과 행동이 제한되는 경직된 사회가 가지는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김도형 기자 kuer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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