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대구 오리온스는 농구팬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였다. 1997년 출범한 한국프로농구(KBL)의 원년 구단 가운데 연고 이전도 하지 않고 모기업도 바꾸지 않은 유일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농구는 1997년 부산 기아, 원주 나래, 안양 SBS, 대구 동양, 인천 대우, 광주 나산, 수원 삼성, 대전 현대 등 8개 팀으로 출범했다. 이 가운데 대구 동양을 제외한 7개 팀이 연고지를 옮기거나 모기업이 변경됐다. 여기에 SK, 모비스, KT, KCC 등 새 기업들이 기존 팀을 흡수하거나 새롭게 합류하면서 현재의 10개 구단이 됐다. 대구 오리온스는 '동양'에서 '오리온스'로 팀명만 바꿨을 뿐 연고지와 모기업은 원년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마지막 원년팀'이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는14일 고양시 킨텍스 2층 라벤더홀에서 고양시와 연고지 이전 및 체육관 시설 이용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 2011-2012시즌부터 연고를 대구에서 고양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자연히 구단 명칭도 대구 오리온스에서 고양 오리온스로 변경된다.
오리온스는 "이번 연고지 이전 추진은 경기 북부 지역에 첫 프로팀이 생긴다는 의미가 있다"며 "고양시의 스포츠 비전인 전문 스포츠 도시로서 인프라 구축과 지역경제 활성화, 문화와 스포츠, 관광이 연계된 스포츠 클러스터를 구축하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리온스는 이달 초 한 스포츠지가 연고지 이전을 기사화하자 “논의가 있었지만 결정 된 것은 없다”고 발뺌했다가 이날 고양으로 연고 이전 계획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연고지 이전은 KBL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이는 큰 문제없이 진행될 분위기다. KBL 내부에서는 고양에 새 팀이 생길 경우 10개팀 가운데 절반인 5개팀이 서울-경기 지역에 몰려있다는 우려가 있긴 하지만, '경기 북부' 지역이라는 희소성으로 크게 반대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구팬들은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특히 대구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전무후무한 32연패 위기에도, 최근 4시즌 10-9-10-10위의 졸전 속에서도 변함없이 대구 경기장을 지켰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연고지 팬들을 버리는 오리온스의 행태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KBL과 대구 오리온스 게시판에는 연고지 이전을 성토하는 팬들의 글들로 넘쳐난다. 대구 팬들은 잇따라 구단 홈페이지 회원에서 탈퇴하고 타팀 팬들도 연고지 이전을 반대한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오는 9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한선교 신임 KBL 총재에게 연고 이전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글도 눈에 띈다.
대구 오리온스가 14년 넘게 뜨거운 성원을 보냈던 대구팬들을 등지고 고양에서 새 출발을 하기까지는 당분간 적잖은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 anju1015@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