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같은 반 한 교우 얘기다. 그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아 친구들이 천재라 불렀다. 천재라는 별명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공부 잘하고 똑똑해서 천재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천하에 재수 없는 놈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그가 중의적 별명을 얻게 된 사연은 그의 교우관계에 있었다. 그는 수시로 친구들을 업신여겼다. '그것도 모르냐' '너 같은 게 이런 걸 알겠냐' 등. 친구들을 비아냥거리는 그의 말투는 아예 버릇이 됐다. 2, 3등을 하는 친구에게는 아예 막말을 했다. '네 실력으로는 죽어도 나 못 이기지. 아무리 열심히 해봐라. 너하고 나하고는 공부하는 방식이 달라.' 그러다보니 친구들은 천하에 재수 없는 놈이라며 그를 상대하지 않게 됐다.
선생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그게 아니죠' 하며 대들기 일쑤였고 친구들에게는 '선생이 제대로 모른다'고 깎아내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선생님이 잘못을 지적하고 호통을 쳐도 그는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교우, 경쟁자, 교사를 무시하는 그에게 나중에는 3무(無)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요즘 애플의 행보를 보면서 30년 이상 지난 일이 다시 오버랩됐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은 천재 잡스의 창조물로 불린다. 그는 아이 시리즈로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자인 경영, 협력업체와의 상생 등도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제품의 천재성 외에 다른 분야로 시각을 돌려보면 찬사는 달라진다.
아이폰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가장 큰 불만은 애프터서비스(AS)다. 천재 잡스의 창조물에 반한 애플 마니아(애플빠)들이 무성의한 AS에 분노, 안티 애플이 됐다는 얘기는 우리 주위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SK텔레콤의 아이폰4 판매 가세로 AS 불만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하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경쟁사에 대한 잡스의 독설은 도를 넘어섰다. 갤럭시 시리즈를 내세워 애플을 추격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겨냥한 애플의 일방적 주장은 비난에 가깝다. '겉으로만 따라하는 흉내쟁이'라고 수차례 공격했다. 결국 소송까지 제기했다. 아이폰의 위치정보 수집과 관련, 문제가 되자 잡스는 '난 안 했다. 구글이 했다'고 했다. 마케팅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이에 앞서 상도의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정부의 요구는 묵살하기 일쑤다. 애플은 우리 정부가 요구한 성인인증, 스팸문자 차단 기능 추가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최근 문제가 된 아이폰의 위치정보 수집과 관련, 질의서를 보냈지만 이도 언제 회신할지 궁금하다. 위치추적을 둘러싼 미국 정부 등의 해명요구에도 '그런 일 없다'고 일관하고 있다. 세계 언론이 들끓고 있지만 뉘우침은 고사하고 사과 한마디 없다.
현재는 잡스의 천재성이 워낙 강해 소비자, 경쟁사, 정부를 무시하는 애플의 3무를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천재의 암투병 소식에 투자자들이 흔들렸던 이유다. 3무는 천재 부재 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최근 애플 전 수석부사장이자 잡스의 멘토로 알려진 제이 엘리엇이 출간한 아이리더십 책 광고에도 애플의 독설이 적혀 있다. '삼성, 지금처럼 하다간 소니처럼 돼.' 모독에 가깝다. 3무 시한폭탄을 지닌 애플이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인가 반문하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충고는 천재 잡스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노종섭 산업2부장 njs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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