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자산운용업계와 고액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헤지펀드에 대해 국내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아시아경제신문과 고승덕 국회 현장경제연구회 대표의원이 공동으로 주최, 1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제 1회 헤지펀드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헤지펀드의 도입 기준과 향후 관리감독의 방향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금융시장의 다양화와 글로벌 수준으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가입 기준도 완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헤지펀드를 도입하기에는 금융당국의 역량이 갖춰지지 않았으며, 투자자 보호를 위한 관리감독 및 규제 방안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절실" = 이날 참석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한국형 헤지펀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위원장은 "금융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에 비해서는 늦었다"며 "그러나 그들의 시행착오와 장단점을 비교한다면 성공적으로 한국형 헤지펀드를 출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금융규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사모펀드 규제가 복잡하고 과도해 창의적 방식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국내 진출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준에 맞춰 시장을 넓혀 금융참여자들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승덕 의원도 한국형 헤지펀드 활성화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했다. 고 의원은 "현재 금융산업은 GDP의 7~8%를 차지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15%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성장산업"이라며 "국내 헤지펀드 도입에 맞춰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건호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헤지펀드 시장의 발전을 통해 국내 금융기관이 글로벌 투자은행(IB)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헤지펀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프라임브로커(헤지펀드 투자행위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의 증권사) 등 연계산업의 발전을 통해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글로벌 IB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자본공급을 활성화 시켜 실물경제지원에도 중요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밖에도 신인석 중앙대학교 교수는 헤지펀드는 유동성이 부족한 시장에서 활동해 관련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시기상조.. 신뢰도 제고가 선결과제" = 헤지펀드 도입을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토론회 참석자들의 근거는 투자자 보호가 어렵고 시장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제창 민주당 국회의원이 글로벌 헤지펀드의 국내 도입은 시기상조이며, 시장과 금융당국의 역량 및 신뢰도를 제고한 이후에 다시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융당국은 헤지펀드를 도입한 후 불거질 수 있는 분쟁이나 문제를 해결할 만큼의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서 "▲금융거래 당사자 간의 인식문제 ▲분쟁해결 절차 ▲관리감독 등 인프라 구축 등이 선제적으로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내 연기금이 부적정한 투자를 통해 대규모 손실을 봤던 전례가 있으며 이 같은 도덕적 해이 문제가 헤지펀드와 묶이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지난해 감사원의 4대 공적연금 감사 결과,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우정사업본부 등에서 상당 금액과 비중으로 부적정 투자를 했다가 수백억원의 손실을 본 바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헤지펀드가 거대 자금으로 국제 원자재 시장을 교란시키는 등 부적정한 방법으로 금융시장에 거품을 형성하고 있다"면서 "펀드 자산을 담보로 외부에서 돈을 빌려오는 소위 레버리지 비율이 높아 마진콜(증거금 부족분 상환요구)에 취약하다는 점 등 근본적인 문제들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은 헤지펀드 도입에 따른 소비자 보호 장치와 리스크 관리 제도 확보를 주문했다.
이 의원은 "헤지펀드는 단기 공격적 측면이 있어 투자자에게 고수익이 강조된 경향이 있다"며 "투자액 전액 손실 경우도 있지만 크게 알려지지 않고 있고 상품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불완전판매 요소가 많다"고 지적했다. 전문가가 아니면 상품 손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전문적인 정보 공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기 과열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투자자격 제한도 제시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은 순자산 100억불·연소득 20만불 이상, 영국은 순자산 25만파운드 ·연소득 10만파운드 이상 등 투자 제한이 있는 만큼 초기에는 투자자제한이나 재간접형태만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그는 "헤지펀드는 태생적으로 단기간에 고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과도한 차입이나 높은 레버리지가 고유 특성"이라며 "헤지펀드의 차입규모를 보고를 의무화 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격투자자 범위 설정 이견 = 헤지펀드 국내 도입을 찬성하는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적격투자자 기준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조재민 KB자산운용 대표는 헤지펀드 도입과 관련해 적격투자자 범위를 50억원 이상으로 제한한 현행 규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대표는 "헤지펀드 적격투자자 범위 설정이 중요하다"며 " 적격투자자 범위를 금융자산 50억원 이상 전문투자자로 제한한 현행 규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산기준을 완화하면 자문형 랩처럼 헤지펀드도 공모펀드화 되는 기형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며 "투자 규정을 유지해 절대 수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헤지펀드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상돈 한가람투자자문 대표도 헤지펀드 운용자의 자격요건을 낮춰 가급적 많은 수의 운용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헤지펀드 운용자의 자격요건에서 자기자본이나 인력, 운용규모 등이 거론되는데 인가요건은 가급적 낮게 가야한다"면서 "적격투자자 범위는 금융자산 기준 5억∼10억원 수준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에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자자요건을 기존에 밝힌 50억원에서 대폭 낮출 것이라고 밝혔다.
조인강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국장은 "투자자 참여 조건을 50억원보다 대폭 낮추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다만 자격 조건을 너무 낮출 경우 투자자 보호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너무 높이면 소규모 투자자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공정사회 차원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수준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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