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기자수첩]이근호, 묵묵했던 '어둠 속 러닝'의 추억

시계아이콘02분 26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기자수첩]이근호, 묵묵했던 '어둠 속 러닝'의 추억
AD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지난해 8월의 일이었다. 조광래 대표팀 감독의 데뷔전이자 2010 남아공월드컵 직후 열린 국내 첫 A매치를 앞두고 25명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파주NFC에 소집됐다. 신임 감독 앞에서 눈도장을 받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은 대단했다.

소집 이틀째 오후 7시 무렵, 공식훈련이 끝났다. 기자 역시 기사를 마감하고 8시가 조금 넘어 기자실을 빠져나왔다. 마침 샤워를 마친 대표팀 선수들이 식당에서 시끌벅적한 식사시간을 갖고 있었다. 저마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며 훈련의 피로를 떨쳐내고 있었다.


파주NFC 정문을 나서 얼마나 걸었을까. 인적 없는 맞은 편 길 끝에서 한 남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이미 땅거미가 짙게 내리깔린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서도 대표팀 트레이닝복을 입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 아, 이근호였다.

한 때 '허정무호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그였다.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만 3골을 넣은 것을 비롯해 허정무호에서만 무려 7골을 기록하며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본선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호사다마였다. 야심 차게 유럽 진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지지부진한 이적 협상 속 훈련량 부족은 페이스 하락으로 이어졌다. 2009년 3월 이라크와의 평가전 페널티킥 골 이후 A매치 득점이 전무했다. 슬럼프는 계속됐고 결국 남아공월드컵을 눈앞에 둔 오스트리아 캠프에서 최종엔트리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크나 큰 좌절감에 휩싸였던 그는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다시 대표팀에 돌아오게 됐다. 그런 그에겐 훈련 뒤 달콤한 휴식조차도 사치였나보다.


스쳐 지나간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신도 모르게 '파이팅'이란 말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부활을 꿈꾸는 '태양의 아들'은 그렇게 어둠 속을 묵묵히 달리고 있었다.


[기자수첩]이근호, 묵묵했던 '어둠 속 러닝'의 추억


하루 뒤 나이지리아의 평가전. 부활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근호는 끝내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젊은 선수들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던 조 감독의 의지 때문이었다. 당시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조 감독은 "개인적으로 이근호는 상당히 좋아하는 선수다. 세밀하고 득점에 대한 감각이 있다. 불행히도 오늘 이근호가 들어갈 타이밍이 없었을 뿐"이라며 아쉬워했다.


그 탓이었을까. 이후에도 슬럼프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여유가 사라졌고 플레이는 단순해졌다. 당연히 수비수를 제치기도 어려웠고 슈팅도 위력적이지 못했다. 2010시즌 41경기에서 고작 7골에 그쳤다. 한동안 대표팀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절치부심한 그는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이 열리는 지난겨울 동안 훈련에 몰두했다. 결과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았다. 올 시즌 시작과 함께 활약이 이어졌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와 J리그에서 3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2골 2도움)를 올렸다.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그의 플레이를 지켜본 조 감독도 만족감을 표했다. 결국 이번 온두라스전을 앞두고 대표팀 27명의 소집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자수첩]이근호, 묵묵했던 '어둠 속 러닝'의 추억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였다. 6월 A매치부터는 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에 나설 베스트 멤버로 임하겠다는 조 감독의 공표가 있었다. 이번에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이대로 또 한 번 좌절을 맛봐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조급하지도,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훈련에서 이근호의 몸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여유와 결의가 동시에 느껴졌다.


소집 이틀째 훈련을 마친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오히려 주변에서 걱정하는 시선이 많다"며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뛸 생각"이라고 말했다. 8개월 전 홀로 러닝 훈련을 하던 당시의 심정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확신과 자신감으로 차있는 눈빛에 더 이상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25일 온두라스전 후반 11분. 조광래 감독은 김보경을 빼고 이근호를 투입했다. 지난해 5월 벨라루스전 이후 약 10개월만의 A매치 출장이었다. 그라운드에 들어서자마자 감각적인 오버헤드킥으로 3만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자신감이 붙은 그는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온두라스 골문을 위협했다.


후반 24분에는 이청용의 크로스를 헤딩슈팅으로 연결했고, 1분 뒤에는 박주영의 정확한 크로스를 받아 문전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지만 슈팅은 골대 위를 향하고 말았다. 그래도 지켜보는 이들은 질책보다 격려의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아쉬운 장면이 지나가며 경기가 끝나는가 싶던 후반 추가 시간, 마침내 그의 부활포가 터졌다. 기성용의 코너킥을 받아 그대로 헤딩슈팅, 골망을 출렁였다. 2년 만에 기록한 A매치 득점이었다. 기쁨의 포효와 함께 그동안의 마음고생도 훨훨 날려보냈다.


[기자수첩]이근호, 묵묵했던 '어둠 속 러닝'의 추억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오랜만에 경기를 뛰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골까지 넣어 기분이 남달랐다. 찬스를 몇 개 놓치면서 부담이 있었는데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더불어 "1분이라도 뛰고 싶었다. 후회를 하더라도 일단 경기에 나서고 싶었다"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조 감독 역시 이근호를 칭찬했다. “후반에 투입됐지만 순간적인 스피드를 이용해 문전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앞으로의 활약에 기대가 크다”며 그의 부활에 박수를 보냈다.


이근호는 지난 22일 대표팀 소집 당시 취재진에게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브라질월드컵 본선으로 떠나는 자리에서도 꼭 인터뷰했으면 좋겠다"며 웃어보였다. 그의 말대로 2010년에 빛나지 못했던 '태양의 아들'이 올해 아시아는 물론 2014년 남미 대륙을 환하게 비출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어둠 속 그 묵묵했던 러닝의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1.2115:53
    '뷔 얼굴' 하나로 국적이 바뀌었다…한국어만 들어가면 불티나게 팔려
    '뷔 얼굴' 하나로 국적이 바뀌었다…한국어만 들어가면 불티나게 팔려

    지난달 일본 최대 뷰티 편집숍 '앳코스메 도쿄(@come TOKYO)'는 일본 뷰티 브랜드 '윤스(Yunth)' 팝업스토어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줄로 북적였다. 일본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관광객이 자주 찾는 쇼핑의 거리 '하라주쿠'에 위치한 매장은 K팝 아이돌인 방탄소년단(BTS) 뷔의 대형 사진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윤스는 지난해 10월29일 뷔를 앰버서더로 발탁했다. 이 때문에 일부 방문객들은 윤스를 K뷰티 브랜드로 오

  • 26.01.2107:05
    "韓국적 갖고싶다" 뜨거운 인기…日돈키호테 점령한 K뷰티⑦
    "韓국적 갖고싶다" 뜨거운 인기…日돈키호테 점령한 K뷰티⑦

    지난달 일본 최대 뷰티 편집숍 '앳코스메 도쿄(@come TOKYO)'는 일본 뷰티 브랜드 '윤스(Yunth)' 팝업스토어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줄로 북적였다. 일본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관광객이 자주 찾는 쇼핑의 거리 '하라주쿠'에 위치한 매장은 K팝 아이돌인 방탄소년단(BTS) 뷔의 대형 사진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윤스는 지난해 10월29일 뷔를 앰버서더로 발탁했다. 이 때문에 일부 방문객들은 윤스를 K뷰티 브랜드로 오

  • 26.01.2009:48
    저렴해서 미국인도 푹 빠졌다…"오늘은 라면에 김치" 외신도 감탄한 K푸드⑤
    저렴해서 미국인도 푹 빠졌다…"오늘은 라면에 김치" 외신도 감탄한 K푸드⑤

    "전 세계에서 K푸드에 대한 수요가 식을 줄 모른다." 미국의 경제 뉴스 채널 CNBC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한국 식품의 글로벌 확산세에 대해 이같이 조명했다. 이 방송은 특히 라면을 K푸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품목으로 지목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K팝과 한국 드라마에서 라면이 자주 노출되면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까지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물가 인상과 생활비 상승도 비교

  • 26.01.2007:16
    "힙하다 힙해" 퇴근길 치맥에 한국 화장품 싹쓸이까지…일상에 스며든 'K'④
    "힙하다 힙해" 퇴근길 치맥에 한국 화장품 싹쓸이까지…일상에 스며든 'K'④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7시 미국 뉴욕 맨해튼 32번가 K타운. 한국 치킨 브랜드 BBQ 매장은 '치맥'을 즐기려는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지하 1층에 마련된 테이블은 일찌감치 만석이었고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들은 치킨을 앞에 두고 맥주잔을 부딪치며 저녁 시간을 즐겼다. 치킨뿐 아니라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등 다양한 한국 메뉴를 함께 주문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매장을 자주 찾는다는 대학생 메디슨 씨는 "학교 근처

  • 26.01.1915:08
    "돼지갈비에 나물" 파리지앵의 저녁 식탁 오른다
    "돼지갈비에 나물" 파리지앵의 저녁 식탁 오른다

    K웨이브 글로벌 현장 점검 "형 집에 놀러 가는데 저녁 메뉴인 돼지갈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파리 오페라 지역(Rue Sainte-Anne)에 위치한 유명 한인 슈퍼마켓 'K마트'에서 만난 맥심 카본(27살)씨는 '100% 태양초'라고 적힌 고춧가루와 송이버섯과 무, 고추장, 튀김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카본은 한국 신림동에서 1년 거주하면서 처음 접한 한식을 잊지 못해 귀국 후에도 파리 한식

  • 26.01.2116:08
    ③장충단공원 이준 열사 동상과 오세훈 시장의 특별한 관계[시사쇼]
    ③장충단공원 이준 열사 동상과 오세훈 시장의 특별한 관계[시사쇼]

    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성동구청장) ②장미경(박홍근 의원) ③송현옥(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은 올해 6·3 지방선거에서 5선에 도전

  • 26.01.1609:11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월 15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전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희석 : 감사합니다. 소종섭 :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제명 처분을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나요? 윤희석 :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죠

  • 26.01.1416:21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1월 14일) ※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함께 여러 가지 이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지내셨죠? 이준석 : 예, 그렇습니다. 소종

  • 26.01.1008:01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808:49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