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해설시리즈35]농림수산식품부, 농산물 공급물량 확대 및 제도 개선
[아시아경제 황상욱 기자] 유통여수(流通如水). 유통은 물 흐름과 같아야 한다는 의미다. 농가를 떠난 농산물이 최종소비자에게 이르기까지 물 흐름과 같이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람직한 유통정책은 상물(商物)의 흐름이 원활할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들고 흐름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의 배추사태로 인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됐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량의 근본적인 부족 이외의 복잡한 유통경로와 배추 생산량의 80% 이상을 산지유통인이 점유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가? 생산지 농가 소비자를 포함한 유통주체 모두가 이익을 보는 유통구조는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제값에 농산물을 시장에 팔려는 생산농가, 저렴한 가격으로 농산물을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일면 상충되는 욕구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정부의 개입이 상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크고 작은 고민을 했다.
임정빈 농림수산식품부 유통정책과장은 최근 한국개발연구원 나라경제 기고를 통해 "이런 고민 속에서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유통구조 개선 T/F팀을 구성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로부터 폭 넓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유통구조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임 과장에 따르면 정부는 먼저 무, 배추 등 신선농산물의 특성에 주목했다. 이들은 부피가 커서 물류비용이 높고 쉽게 부패하고 저장성이 낮아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감모율(줄어들거나 닳는 비율)이 높다. 배추의 경우 감모율이 판매가의 약 20%에 달한다. 또 신선농산물은 생산 장소에서 바로 유통시킬 수 있는 공산품과 달리 산지 수집, 분산 과정이 필수적이다. 산지 생산, 수집, 분산이라는 기본 단계를 거쳐야만 상품이 소비자의 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상품화를 위한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친다. 유통 효율화를 위해서는 유통단계의 축소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소비지의 여건 변화를 고려했다. 대형유통업체, 급식·외식업체, 김치업체 등 대량 수요처의 급성장은 규격화·표준화된 농산물 공급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1인 가족, 시니어층의 증가는 신선편이 농산물에 대한 수요 증대를 가져왔다. 이런 소비여건의 변화는 고령화된 생산농가, 소품 위주의 생산구조와 도매시장 중심의 유통구조가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의 해결책으로 농협의 경제사업 강화에 착안했다. 농협이 소농 위주의 생산농가를 조직화하고 농산물을 수집해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유통구조 개선의 관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농협 중심의 유통구조 개선은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새로운 유통구조가 제 모습을 갖추는 과정에서 지난해 배추파동과 같은 위기상황의 재발방지를 위한 단기 대책 마련도 고려했다.
요약하자면 이번 유통구조 개선 대책은 목표를 유통단계 축소,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상응한 유통구조 구축, 안정적인 생산기반 확보로 삼았다. 대책의 근간은 배추·무 등 채소류에 대한 생산자 단체인 농협 역할 확대를 통한 유통비용 감소와 수급안정이다. 즉 농협 취급물량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직거래 시스템 구축을 통해 유통단계를 축소하는 것이 핵심이다. 더불어 단기적인 농산물 수급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공급물량 확대 및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8% 수준에 불과한 농협의 취급물량을 계약재배 등을 통해 오는 2011년까지 15%, 2015년 5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도매시장 직거래 시스템을 강화하고 현행 5~7단계의 유통단계를 3~4단계로 줄여 유통비용도 점진적으로 줄일 예정이다.
농협은 직거래 물량 확대 및 유통단계 축소를 위해 농가와 계약재배 방식 개선, 영농작업단 구성 및 다년계약제 도입과 도매물류센터 설립 등 유통기반을 구축한다. 이를 통해 농협과 계약을 맺은 농가는 생산에 집중하고 농협은 농산물을 수집해 도매물류센터를 통해 대량구매처로 분산하는 공급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그리고 작황 현황, 수요 전망을 고려한 자율적 수급조절 기능까지 농협의 역량을 강화한다.
아울러 단기적으로 유통비용 절감과 수급안정을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첫째 이상기후에 대비해 시세예측모형을 개발하고 정보제공 대상을 확대하는 등 농업관측을 내실화한다. 일시적인 수급 불안 해소를 위한 공급량 확대를 위해 수입산 위주의 비축에서 국내산 비축 물량을 점차 늘리기로 했다.
둘째 농안법을 개정해 현행 경매 위주의 도매시장 제도를 시장변화 추세에 맞도록 개선한다. 주요 내용으로는 경매제 중심에서 정가·수의매매 등으로 다양화해 가격진폭을 줄이고 경매대기 시간을 축소해 유통 효율성을 증대한다. 경매제도를 생략하고 직접 도매거래를 통해 유통단계 축소할 수 있는 시장도매인제의 확대 및 촉진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와 병행해 거래의 투명성을 보완하기 위해 출하자에게 출하대금을 정산해주는 조직을 신설할 계획이다. 가격 급등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매시장에서 경매가격이 과열되는 경우 1일 상승률을 제한하는 가격조정제도를 도입한다.
또 직거래 활성화를 위해 각 도별로 농업인이 주체가 되고 해당 지역농산물이 중심이 되는 농업인 직거래 장터를 확충한다. 올해는 수요조사를 통해 일정규모 이상 정례 운영되는 장터를 도별로 1~2개소씩 설치하고 장기적으로 성공한 장터를 모델로 삼아 확대하게 된다. 온라인(on-line)상 직거래도 확대한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설치돼 있는 농수산물 사이버거래소의 B2B 거래를 학교급식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유통구조 개선대책을 수립하면서 유통 문제의 시작과 끝이 산지(産地)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생산농가가 변해야만 하고 유통의 실질적인 주체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농업발전과 유통문제의 해결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위기는 기회다. 다만 그 기회는 위기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자에게 온다. 지난해 배추파동이 정부에게는 시련의 기간이었지만 국민들의 농산물 유통구조에 대한 관심을 제고한 긍정적인 면이 있다. 정부는 국민의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황상욱 기자 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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