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공방전 후 대치중.. 국제사회, 압박 수위 높여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리비아 반정부 시민군이 수도 트리폴리의 문앞까지 진격했다. 정규군 병력들이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에 등을 돌리고 연이어 반정부 세력에 합류하고 있는 가운데 트리폴리에서 카다피의 친위 병력과 반정부 시민군과의 전면 충돌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편 제2도시 벵가지를 중심으로 과도정부가 구성되는 등 뚜렷한 지도부가 없었던 반정부 세력들이 구심점을 형성하고 있다.
◆반정부 시민군, 수도 앞 48km까지 진격= 국제연합(UN)의 리비아 제재결의안 발표 다음날인 27일(현지시간) 반정부 시민군이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30마일(약 48km) 떨어진 도시 알-자위야를 점령했다고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알-자위야에는 주민 약 2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현지 목격자들은 26일 새벽부터 카다피의 친위 보안군과 반정부 시민군이 정유시설 등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였으며 27일에는 시내 중심가에 반정부 시민군의 3색 깃발이 꽂히고 수백 명의 시민군이 시내를 장악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반정부군이 탱크와 대공포 등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으나 시 외곽은 카다피측 병력이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리비아의 제3도시인 미스라타에서는 카다피측 친위군 병력이 반격을 가해 반정부 시민군이 장악한 공군기지를 다시 탈환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위군은 미스라타 시내 통신시설에 대해서도 병력을 헬기에 싣고 공격을 가해 왔으나 시민군의 대응사격으로 철수했다고 현지 주민들이 전했다. 일부에서는 카다피측 병력이 예상보다 강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정부 세력은 현재 리비아 전역의 80%를 장악했으며 트리폴리 진공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카다피측 병력의 무장 수준이 더 높아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정부군을 이탈해 벵가지에서 군사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아흐메드 가트라니 준장은 인터뷰에서 “상당한 희생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기에 트리폴리 진입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병력을 편성중”이라고 밝혔다.
◆트리폴리는 ‘폭풍전야’= 주변 도시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것과 달리 수도 트리폴리는 비교적 평온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리폴리 시내에서는 지난 금요일 다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으나 카다피 친위군의 무차별 총격에 수많은 희생자를 낸 바 있다.
현지 주민들은 일요일부터 소매업소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으며 아침부터 은행 앞에 예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전했다. 카다피는 지난 주 연설을 통해 가구마다 500디나르(약403달러)를 제공하겠다면서 친정부 세력 늘리기에 나섰다. 정부는 수도가 평소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면서 선전을 강화하고 있으며 정부의 허가 아래 트리폴리로 들어온 외신 기자들은 일요일 오후부터 녹색 깃발을 든 카다피 지지자들의 친정부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시내 일부에서는 친위군의 학살에 희생된 시신들이 곳곳에 널려 여전히 참혹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자체 소식통을 통해 확인된 희생자만 최소 19명 이상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금요일 시위를 조직했던 한 시위자는 인터뷰를 통해 “금요일 시위에서는 물대포·최루탄조차 등장하지 않았으며 진압군이 바로 중화기를 발포했다”면서 “반정부 시위자들이 무자비한 진압에 무력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 반정부 세력 벵가지에 과도정부 수립.. 구심점 생기나= 리비아 동부를 장악한 반정부 세력은 제2도시 벵가지에서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법무장관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압델 잘릴 전 장관은 현지시간으로 26일 알자지라TV와 인터뷰를 갖고 벵가지에서 군과 시민 대표들로 구성된 과도정부가 출범했으며 자신이 지도자를 맡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도정부가 3개월 이상 존속하지 않을 것이며 시일 안에 공정한 선거를 치르고 리비아 국민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반정부 진영 내 다른 이들은 국민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잘릴 전 장관의 과도정부는 개인적 차원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등 반정부 세력 내에서도 혼선을 보이고 있다.
◆UN안보리, 제재안 결의.. 우호국 이탈리아도 등돌려= UN 안전보장이사회가 현지시간으로 26일 15개국 만장일치로 카다피 일가와 고위 관료 16명에 대한 해외 자산 동결 및 여행 금지, 리비아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를 골자로 한 제재결의안을 채택했다. 군을 동원해 시위대에 발포한 행위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카다피가 즉각 퇴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UN안보리의 제재결의 발표 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전화 통화를 갖고 “한 나라의 지도자가 오로지 폭력으로 권좌를 유지한다면 권력의 정당성을 잃은 것이며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튀니지와 이집트 민주화시위 당시에도 국가원수의 퇴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더 이상의 유혈사태는 있어서는 안된다”며 카다피가 즉각 물러날 것을 촉구하는 한편 미국 내에 있는 카다피 일가와 리비아 정부의 자산을 동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비아와 밀접한 경제관계를 가진 대표적 우호국 이탈리아도 카다피에 등을 돌렸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카다피의 퇴진은 이제 피할 수 없다”면서 양국간 우호협력관계는 사실상 중단됐다고 선언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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