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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24시] "거울조각 깨 교도관 목숨 노리는 곳"..피말리는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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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본지 박현준 기자가 교도관으로 임용돼 춘천교도소에서 근무하고 돌아왔습니다. 정식 임명장을 받고 지난 17~18일 이틀 동안 춘천교도소에 신입 교도관으로 들어가 칼로 상대방을 35번이나 찔러 죽인 살인범부터 친모를 성폭행한 강간범까지 상대했습니다. 이는 교도소의 문을 허락하지 않던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허용한 일로, 기자로서는 첫 교도관 체험입니다. S3급 죄수 850여명이 수감된 춘천교도소는 교도관들 사이에서도 기피지역으로 꼽힐만큼 근무 강도가 높은 곳입니다. 17일 아침 안희용 춘천교도소장에게 신고식을 거친 박 기자는 교도관 복장을 하고 철창문을 들어가면서 핸드폰부터 반납해야했습니다. 교도관들은 재소자와 마찬가지로 외부와 소통이 단절된 채 교도소 곳곳에 설치된 103대의 카메라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늘 감시받고 있었다고 박 기자는 전합니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고들 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경찰관인 줄 알고 자랑했더란다. 그러나 머리가 커가면서 아버지의 진짜 직업을 알고 나서는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슬슬 꺼려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그걸 알아챘다. 아버지는 교도관이다. 그들은 자식의 그런 모습을 보고 한탄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아직도 간수(看守)라고 부르기도 한다.

12년차 교도관에게 물어봤다. "죄수들이 많이 험악하네요.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 좀 하나요?" "1명 정도는 진짜 반성하고, 20명 정도는 뭘 잘못했는지는 아는 듯한데. 나머지는…" 잠시 뒤 5사동 상층 근무실에 들어섰다.


◆재소자와 교도관을 함께 감시하는 CCTV=김정래 교도관은 오늘도 솔로몬의 지혜를 빌린다. CCTV 모니터가 설치된 근무실 한켠 책장에서 성경을 꺼내 19장11절을 펼쳤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잠언을 꺼내서 읽어봅니다. 벌써 수십번을 봤습니다" 방금 전 한 재소자가 면담을 하고 싶다고 들어와서는 "좀 더 편한 요양병동으로 옮겨달라"고 쏘아대는 소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김 교도관이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달랬지만 막무가내였다. 좀 더 기다려달라고 간신히 설득하고 나서야 붉은 눈빛의 재소자는 돌아갔다. 김 교도관은 평온한 말투로 늘상 있는 일이라고 했다.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의 악다구니에 시달렸다. 지난 11일에도 한 재소자가 갑자기 벨을 누르며 교도관을 불렀다. CCTV는 그 재소자가 한 손에 거울을 깨뜨려 즉석에서 만든 칼을 쥐고 있는 영상을 보여줬다. 벨 소리에 교도관이 무심코 반응해서 다가오면 찌르려는 것이었다. CCTV가 없었다면 무고한 생명이 꺾였을 것이다.


노란색칠을 한 진정실에도 재소자의 일거수일투족을 CCTV가 지켜보고 있었다. 의료실엔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과, 서울대 피부과와 원격진료가 가능한 모니터가 갖추어져 있었다. 오후 2시30분. 보안과를 거쳐 들어선 중앙통제실에는 31대의 모니터가 교도소 곳곳에 설치된 103대의 카메라를 통해 전달되는 교도소의 속살들을 비추고 있었다. 중앙 모니터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자살 우려자를 집중해서 보여준다. 나머지 재소자들은 대부분 벽을 바라본 자세였다. 상처가 생긴 환자가 발생하자 CCTV는 재소자가 수감된 감방 문을 비추더니 문이 열리자 자동으로 줌인됐다. 원하면 감방안의 대화도 들을 수 있다.


◆ "죄 대신 사람을 보라"=밤 11~2시 사이에 5개 동을 순찰 돌며 재소자들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했다. 윤대광 교도관과 함께였다. 감방 바깥 복도에 걸린 온도계는 21~24도를 유지했다. 방은 이 보다 2~3도 높았다. 더운지 창문을 열어놓거나 속옷바람으로 잠든 재소자들이 많았다. 자살예방을 위해 감방 안의 형광등은 밤에도 꺼지지 않았다. 안대를 차고 잠을 청하는 재소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윤 교도관은 감방안을 들여다 보며 표찰에 걸린 숫자와 사람숫자가 일치하는지 일일이 셈을 했다. 한번만 눈길을 주는 데도 숫자가 바로 나왔다. 재소자들이 잠자는 자리를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 곁에서 자는 재소자가 신참이라는 말도 했다.


"이들에게 도덕같은 게 남아있다고 생각하세요?"
"조금 비뚤어지긴 했지만 있기는 있어요. 자기가 범한 죄를 빼고는 나쁜 게 뭔지를 알지요. 흉악범죄를 보면 같이 격분하기도 해요."


윤 교도관이 다음 순찰지로 이끈 곳은 종교반이었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에 따라 생활하는 감방이다. 복도에 난잡하게 속옷 따위가 걸린 다른 사동과 달라보였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분위기였다. 복도를 따라 걸어보니 한 재소자가 탁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게 보였다. 성경을 펼쳐놓고 연필로 조심조심 베껴 쓰고 있었다. 남아 있는 양심의 조각을 다시 되살리려는 노력이다. 규정 시간을 넘어 깨어 있기는 했지만 탓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첫 근무 투입 때 들은 말이 생각났다. "재소자들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말고 사람으로 대하도록 하세요" 죄 대신에 사람을 보라는 말을 교도관들은 몇 번이나 강조했다.
18일 새벽 5시부터 근무에 들어간 김진태 교도관에게 궁금함을 못 참고 물어봤다. "사람을 잔혹하게 찌르고 들어온 사람을 보면 무섭지 않으세요?" "음, 저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생활하다 보니 신경을 안 쓰게 됐어요. 선입견 없이 사람으로 대하면 재소자들도 존중해주지요. 이들도 관복(죄수복을 일컫는 교도소 용어)을 입고 있지만 불우하게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 수도 있지요" 교도관들은 단 한명의 재소자를 향해서도 수인번호를 부르지 않았다. 번호로 부르는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에 불과했다.

[교도관24시] "거울조각 깨 교도관 목숨 노리는 곳"..피말리는 24시간 담장 너머 재소자들이 사는 사동이 있다. 장기석 교도관(오른쪽)과 함께 걷는 본지 기자. 봄이 오면 이곳에도 꽃이 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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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범' 김길수=재소자들은 다른 죄목만큼 각기 다른 색깔로 구분되고 있었다. 감방 앞에 걸린 표찰에 마약사범은 파란색, 조폭은 형광색, 일반 재소자는 하늘색 등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를 만난 곳은 4동 상층이었다. 이곳은 입실거부나 지시 불이행 등으로 말썽을 빚는 이들이 주로 모여 있는 곳이다. 새벽 5시. 모두가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 그는 잠을 자지않고 있었다. 아니 잠을 거부하고 있었다. 도인처럼 수염을 기른 그의 이름은 김길수(가명)다. 춘천 교도소는 3진 아웃제를 시행중이다. 3번 규정위반이 발각되면 징계에 들어가는 데 김길수는 관복이라 부르는 죄수복을 안입고 이어진 경고 스티커 발부에 서명하지 않은 채 "주둥이 닥쳐라, XX들 맘대로 하라"며 난동을 부리다 독방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교도소 내에서 사고를 치면 따로 조사를 받고 최대 30일까지 징벌을 받는다.


조사를 받을 때는 텔레비전을 못보고 라디오만 들을 수 있지만 징벌자가 되면 먹을거리 구매가 불가능하고 책과 신문, 편지와 전화 등의 소통이 전면 금지된다.


김의 죄명은 송유안전관리법 위반이다. 처음 듣는 죄명이었는데 알고 보니 송유관에서 기름을 빼먹다 잡힌 케이스였다. 평소에도 다른 재소자들과 말을 나누지 않는 등 자기 세계에 빠져사는 인물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 교도소에 오는 것 같나요?" 김진태 교도관에게 물었더니 꽤나 철학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 같아요. 자기 성찰도 부족하고…. 범죄자들은 편협한 성격에다가 자기 의견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김길수가 그랬다. 김은 '정보공개청구'라는 제도를 악용해 교도관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교도소내 사소한 행정까지 문건을 공개하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그동안 김이 요구한 청구에 대해 교도소측이 계산해보니 3만2340장에 인쇄비만 174만원이 들었다. 순전히 교도소 업무량을 늘려 골탕 먹이려는 수작이라는 것이다. 지능범이 따로 없었다.


◆교도관의 일상=1990년대 후반 교도소에 첫발을 내디딘 김정환 교도관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1998년에 들어왔는데 동기 7명 중 5명이 이직했어요. 그 중 상당한 이유가 교도관들이 지는 책임감 때문이었어요."


교도관 한 명이 적게는 60명에서 많게는 200명의 재소자들을 관리해야하는 게 우리나라 교정행정의 현실이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관리 대상자들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17일 저녁 6시30분. 기자는 다른 교도소처럼 복도 한 가운데에 책상을 갖다놓고 창살너머로 재소자들을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재소자들이 "아, 이거 뭐야"하고 큰 소리를 냈다. "담당님, 그런 거 안 하셔도 됩니다" 이방 저방에서 메아리처럼 소리가 들려왔다. 창살에 갇힌 건 재소자들인데도 기자가 동물원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앉은 복도에 죄수들만 많았다. "이 담당님, 참 말 안 듣네" 십분여 가량을 기자와 눈싸움 하더니, 보라미 방송국(전국 교도소내 방송국)이 틀어주는 드라마로 이내 눈길을 돌렸다. 바보 취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곳 춘천 교도소는 근무실이 따로 있어 복도에서 지킬 필요가 없지만 아직도 다른 교도소들은 이런 식으로 감시를 하는 곳이 많다. 따로 근무실이 없어서다. 이 때 많은 교도관들이 기자가 느낀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복도에 앉아 근무를 서면 오히려 재소자들이 교도관을 불쌍한 표정으로 본다. 얼굴 표정도 재소자들이 더 밝다. 재소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위험하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근무를 서다 몇년 전 한 교도관이 재소자들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창살 너머, 재소자와 교도관 사이에 긴장이 흘렀다.


신참 교도관으로 분장한 기자는 재소자들을 만날 때마다 위축됐다. 저녁식사를 끝낸 6시30분. 나란히 늘어선 감방을 다니며 약을 건네줬다. 가벼운 감기약부터 심장약까지 서울의 중간급 병원에서나 처방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담당님, 처음 오셨나요?" "네, 오늘 처음 왔습니다" 규정상 교도관은 재소자들의 약을 삼키는 것까지 확인해야한다. 약을 몰래 모아뒀다 엉뚱한 데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정대로 하려고 하자, 기자 보다 두 뼘이나 커 보이는 재소자가 눈을 부라렸다. "끝까지 보실 거 없습니다, 예?" 마지막 억센 억양이 그와 나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창살사이로 흘러나왔다. 순간 움찔한 파장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래도 교도관들은 뛰었다=휴게실에서 최근규 교도관과 잠시 커피를 마셨다. 2시간씩 이어지는 근무를 마치면 이런 달콤한 시간이 교도관들에게 주어진다. 비상식량으로 나오는 건빵을 함께 먹었다. 휴게실에는 커피 자판기와 컴퓨터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호출이 들렸다. "긴급환자가 발생했다" 17일 밤 9시 25분이었다.


다른 교도관과 함께 환자가 발생했다는 1동으로 뛰어갔다. 12방에서 교도관과 기동순찰팀이 환자를 들 것에 싣고 있었다. "조심조심, 빨리!" 환자는 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들 것에 몸을 얹자마자 장수남 기동순찰팀장을 비롯한 교도관들이 구급차를 향해 달렸다. 교도소 구획마다 통로를 차단하는 철문도 이때는 활짝 열려 있었다. 200미터 남짓한 감방과 구급차까지 거리가 고속도로처럼 뚫렸다.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대기하던 구급차에 도착해 열린 뒷문으로 환자를 옮겼다. 시동이 걸린 차가 교도소를 떠나고 시계를 보니, 오후 9시28분. 환자발생에서 이송까지 딱 3분이 걸렸다. 안도했다. 그런데 교도소 밖으로 나가는 듯 움직이던 구급차가 이상하게 후진을 하더니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알고 보니, 연습상황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한다고 한다. "지난 번엔 5분 걸렸는데 이번에 3분 걸렸다"고 다들 자축했다. "혹시 재소자들이 목을 매거나 하면 5분 이내에 이송해야 구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빨리 뛰어야, 사람 목숨을 살립니다. 그래서 이렇게 훈련을 합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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