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황용희 릴렉스토크](2편에서 계속) 변진섭이 지난달 18일 미니앨범을 냈다. 어느 덧 마흔을 넘긴 나이에 두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그의 외모는 여전히 앳된 느낌을 풍겼고, 목소리 역시 곱고 섬세했다. 하지만 음악에는 원숙미가 느껴진다. 타이틀곡 ‘눈물이 쓰다’는 과거 그를 좋아했던 중년팬 뿐 아니라 까마득한 후배 가수인 휘성과 2AM 임슬옹조차 자신들의 트위터를 통해 극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다.
과연 그가 말하는 음악, '발라드'란 어떤 음악일까? 또 그리고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음악세계는 또 어떤 것일까? 스포츠투데이는 25일 26일 1회, 2회를 기사화한데 이어, 29일 마지막 3회를 연재한다. 싸늘한 초겨울의 날씨속에서 새롭게 우리앞에 선 변진섭의 새로운 희망가를 들어본다.(편집자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발라드 황제’였지만, 내리막길도 있었다. 너무 갑작스레 찾아온 크나큰 성공은 갓 스무살을 넘긴 청년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면이 없지 않았다. 1집과 2집이 동시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90년에는 가수왕을 차지했다. ‘희망사항’은 무려 1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말이 16주지, 한 곡을 가지고 4개월 동안 1위 후보로 방송에 오른다는 건 점점 기쁨보다 매주 다른 무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성취감도 떨어져갔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도 없는, 정말 말도 안되는 고민이었지만, ’희망사항’으로 16주 연속 1위를 하던 시절 ‘매주 나가는 데 옷은 뭐 준비하지’, ‘지난 주와 어떻게 다른 걸 보여주지’라는 고민이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어떨 때는 영상으로 대체했을 정도였죠. 더군다나 오랜 기간 1위를 고수하면서 몸도 지치고, 행복감이나 성취감도 없다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몸과 마음도 힘들었지만, 감당하기 힘들만큼 큰 인기에 도취된 부분도 없지 않았다. “인기라는 것은 물거품과 같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수왕하고, 1위를 계속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가만있어도 1등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사람이 마취가 돼버렸죠.
물론 너무나 값진 자리지만, 만사가 지친데다 천성적으로 보헤미안 기질까지 있어서 조금 마음을 놓게 된 시기였죠. 그렇다고 방탕하게 지낸 건 아니었어요(웃음)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게 세상이고 대중이라는 것을 느낀게, 대가없이 정상의 자리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죠. 내 스스로가 최선을 안하니까 처절할 정도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어요.”
때마침 불어닥친 랩과 댄스 음악의 강세 속에 변진섭은 서서히 대중으로부터 잊혀져 갔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어느 순간부터 가수왕이나 1위는 커녕 10대 가수에도 10대 가수도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변진섭의 위상은 1~2년만에 급락해 있었다. 너무나 많은 가수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요계에선 가수왕이라도 잠깐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돌아보니 너무 멀어져 왔다는 걸 느낀 순간이 5집 만들 때 쯤이었어요. 계속 앨범도 내고 꾸준히 활동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가수란게 자기 생각대로 앨범만 만들고 공연한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끊임없이 활동도 하고, 매니지먼트도 하고, 언론에도 자주 노출되고 해야 되는데... 1, 2집이 너무 잘돼서 지쳐버렸던 거죠”
물론 1,2집의 대성공 이후 급변하던 가요계 판도 속에서 변진섭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단시간에 얻은 큰 인기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싶은 심적, 음악적 변화도 있었다.
“사실 3집 때 심경의 변화가 컸습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앨범만 내다가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대로 하고 싶었죠. 그래서 1,2집 때까지는 프로듀서 말을 잘 듣는 편이었는데 3집에는 내 고집을 좀 부렸어요.”
기존의 인기에 힘입어 3집과 4집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과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5집을 준비할 즈음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내가 전위예술하는 것도 아니고 대중예술인데, 시대에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뭔가를 새로운 걸 가미해야 하나’란 강박관념이 생기기 시작하기도 했죠”
그러나 그 때 당시는 1년, 1년이 달랐다. 엄두는 나지 않고, 그러면서도 ‘지난 번과 똑같네’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결국 변진섭은 트렌드를 따라가기 보다는 ‘클래스’ 자체를 올리자는 쪽을 택했다. 보통의 가수들은 ‘반짝’하는 인기를 누린 뒤 그 인기가 사그라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가수로서의 삶을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변진섭은 끝까지 발라드 가수의 길을 고집했다. 특히 인기의 소중함과 덧없음을 경험한 것은 그가 오랜 시간 음악생활을 해나가는 원동력이었다.
“그런 경험이 굉장히 큰 교훈을 줬죠. 덕분에 어느 순간에도 초연해질 수 있는 여유가 생겼거든요. 관망하듯이.. 일찌감치 그런게 생긴 셈이죠. 사실 처음 가수할 때부터 큰 인기나 영광이 목표가 아니었으니까, 좌절하지도 않고, 좌절할 필요도 없었어요. 앨범을 내고 잘 안되도 ‘이번 노래는 생각만큼 안되네’...그정도? 그렇다고 잘 해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좌절하지 않고, 굉장히 편하게 음악을 하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죠. 매니저한테 홍보 좀 잘 해보라고 닦달도 안하고(웃음). ‘최선을 다하자’! 정도의 마인드랄까..”
그런 초연한 자세으로 음악에만 몰두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후배 가수들은 물론 젊은 세대에게도 감동을 주는 지금의 변진섭을 만들어 준 힘이었다.
“그런 와중에 슬옹이와 휘성이 제 신곡을 듣고 감동했다는 얘기를 듣고 찌릿하면서 와닿았습니다. 너무 고마웠죠. 아까도 얘기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걔네 음악 들을 생각도 안하고, 아무 연관도 없는데 그 친구들은 내 음악을 들어주고 높이 평가해준걸 보면서 뒤통수를 맞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배우는 계기가 됐어요”
사실 예전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 뒷 세대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 부끄러운 거라고. 괜히 그것 때문에 ‘오빠 소리’에 연연한다 둥, 추하다는 둥 그런 소리를 듣기 싫었다. 그런데 그런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느꼈다.
“내 주위에서부터 많이 그런 식으로 편가르고 물어봐요. 예컨대 음악 방송에 나가면 MC가 제 팬층이 주로 30, 40대라고 규정지으며 요즘 세대와 편을 가르는 듯이 얘기하죠. 솔직히 말하면 3집 때만 해도 신승훈팬이 내 다음 세대 팬처럼 보였고, 그 팬들한테 어필하려고 하는게 자존심 상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거에요. 가수들이 ‘자기 세대’ 팬들만 챙기려는 경향이 있는데, 나 역시도 30, 40대 팬들만 생각하는 음악적 편식을 했다는 것에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후배들 노래도 많이 듣고 있어요. (웃음).”
더불어 우리 대중음악계가 예전 음악-요즘 음악의 경계가 없이 전 세대가 전 세대의 음악을 즐길 줄 아는 풍토가 자리잡길 바라는 소망도 얘기했다.
“대중가요 팬이라면 예전 노래도 많이 듣게 됐으면 좋겠어요. 대중음악이 가장 발달한 미국만 하더라도 50년대 불렸던 노래가 지금도 인기를 얻고 있잖아요. 우리나라도 점점 그런 식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고 믿어요. 더불어 휘성과 슬옹의 반응이 젊은 팬들로 하여금 지난 가수들의 지난 노래, 특히 제 노래를 다시 듣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제는 인기에 연연해 하지 않는 변진섭이지만, 역시 후배들이나 다음 어린 세대들에게 어필한다는건 기분 좋은 일이다. “미니홈피를 가끔 하는데, 종종 10대 팬들이 내 홈피에 들어와 ‘삼촌이라고 할까요 오빠라고 할까요’라고 물어요.(웃음) 물론 예전 오빠부대같은 열정적 관심은 아니지만, 예능이나 음악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10대팬들이 팬클럽에 가입하는 경우도 적지만 종종 있죠. 내 세대 팬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당연한데, 나를 모를 것이라 생각한 어린 세대가 좋아해주면 참 기분이 좋아요.”
요즘은 예능 프로 출연을 하지 않으면 곡은 물론 가수도 홍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변진섭의 얼굴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 달 미니 앨범을 발매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시대가 예능을 원하는 환경으로 변하다보니, 예전엔 ‘무릎팍도사’와 ‘야심만만’ 등 예능 프로에도 출연했었죠. 반응은 좋았지만, 솔직히 저에겐 앨범이 나오면 의무적으로 거쳐야 할 코스일 뿐. 큰 의미는 없었어요.”
신곡 ‘눈물이 쓰다’가 호평만큼 대중적 인기가 오르지 않는 건, 그리고 변진섭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적은 것도 변진섭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내비치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예능 프로그램에 잘 나오지 않고 오직 음악으로만 승부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한 일종의 대항일까.
“제 생각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돼요. 윤종신 혹은 김태원처럼 아예 깊게 예능을 파고 들어가든가, 아니면 아예 하질 말든가... 그런데 제가 한번 쭉 나가 봤는데 저한테는 의미가 없더라구요. 물론 산에서 도 닦으면서 음악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큰 모험이었어요.”
홍보를 위해 섣불리 예능에 나섰다가 오히려 이미지만 망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윤종신과 김태원은 예능에 나가 성공한 케이스라고 보는데, 대단한 모험이라고 생각해요. 나같은 성향의 사람은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죠. ‘무릎팍도사’에 나갔을 때 전화연결됐던 (이)승철이가 ‘너만큼은 음악으로 승부해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해줬는데, 동감해요. 내가 승부를 걸때는 음악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면 실패해도 후회가 없겠죠. 내가 생각하기에 아니라는 길로 가는 건 후회가 많을 수 밖에 없어요. 그래도 주변에서 예능을 너무 많이 얘기하니까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많아요.(웃음)”
라디오DJ를 했을 만큼 입담이 좋은 변진섭이 예능에 도전하는 것이 모험이라니. 일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TV를 보면 예능 프로그램이 재밌지만, 내가 그 안에서 하는 것은 엄두가 안 나요. 물론 제가 저기 나가서 ‘말발’이 떨어질 것 같진 않는데, 예능 프로그램은 화술이 뭔가 다르더라구요(웃음). 그 안에서 쓰이는 말은 또 다른 언어처럼 느껴져요. 코드 자체가 다른, 또 다른 언어 문화가 생긴 거죠. 그런 부분을 트레이닝까지 해서 얻어갈 생각은 없다는 뜻입니다
예능에 나오지 않고도 이승철같이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어요. 그를 위해선 앨범의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 1위는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아요. 물론 앨범이 잘되고 노래가 잘돼서 도약하고 싶은 마음은 있죠. 하지만 이젠 그저 앨범 하나 하나를 낼 때마다 그 음반이 제 음악 인생의 교두보 역할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합니다.”
정확히 어떤 교두보를 의미하는지 재차 물어봤다. “제가 원하는 그림대로의 변진섭이 되기 위한 교두보가 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대박입니다. 어느 노래를 하든지 사랑받고 기억되는 노래들을 부르고, 예전 노래들은 추억을 주고, 후배들이나 어린 팬들에겐 자기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앨범낼 때마다 그런 소망만 가져요.
물론 생각만큼 안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가수란 길이 그만큼 힘든 길이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그러다 보면 늙겠지만, 길게 보는 희망이랄까. 사실 그 정도만 돼도 큰 욕심이에요.(웃음) 제가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인간의 인위가 없는 운명적인 것이란게 있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다보면 잘 될 것이라 믿어요. 한동안은 기본만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마치 숙제만 하고 더 이상 공부 안하는 학생같은 시절. 그러나 지금은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란 기대를 합니다”.
지난 달 미니 앨범을 발매했던 변진섭은 12월 4일과 5일 숙명아트센터 씨어터S에서 ‘더 발라드’라는 타이틀로 단독콘서트를 연다. '희망사항', '새들처럼', '로라', '사랑이 올까요', '숙녀에게',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등 23년간 쏟아낸 그의 히트곡을 중심으로 부드럽고 때로는 강렬한 '변진섭표' 발라드에 흠뻑 젖어볼 수 있는 공연이다.
주제에 걸맞게 올드팝송부터 요즘 발라드곡까지 국내외 뮤지션들의 발라드도 부른다. 이어 새롭게 재해석한 리메이크곡, 대학시절 헤비메탈 그룹사운드 활동의 기억을 살려 록발라드곡도 들려주는 등 그동안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한 무대를 준비한다.
그러나 앨범 발매 시기가 연말에 겹치면서 2008년과 2009년, 동창회라는 특이한 포맷으로 주목받았던 '변진섭 동문회'가 올해 열지 않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에 대해 변진섭은 “보통 연말에 송년회나 동문회를 하는데, ‘변진섭 동문회’는 내 콘서트와 맥주 파티를 함께 하면서 거기서 송년회를 하는 취지로 하는 공연입니다. 어차피 송년회를 하다보면 공연 티켓값보다 훨씬 돈을 많이 쓰는데, 느낌이나 의미는 뻔하잖아요. 먹고 마시고 수다떨고...남는게 없어요. 그런데 제 공연에 참석하면서 송년회까지 같이하니까 기억도 되고, 돈도 더 적게 들고 좋죠(웃음) 송년회 문화를 흥청망청이 아니라, 공연 문화와 섞고 싶었어요.
다만 올해엔 11월에 앨범이 나오다보니, 정규 콘서트를 12월에 해야 하는 상황이 겹쳤죠. 한 달에 두 차례 공연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려움이 따르다보니 올해 한번만 쉬게 됐습니다. 다음부터는 꾸준히 할 생각이니 많이 찾아 주세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마주 앉아 지난 그의 23년 음악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 덧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마치 시간 여행 속에 빠져 있는 느낌이었고, 이제는 그 길었던 여정 속 아쉬움에 마침표를 찍으면서도 앞으로 뮤지션으로서의 희망을 들을 차례였다.
“승철이도 한동안 부진하다 부활과 함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부르면서 재기에 성공했어요. 방금도 얘기했지만 네버 엔딩 스토리처럼 내 음악 인생의 교두보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활동하기가 너무 불편해요. 내 팬들이 나에 대해 갖는 이미지를 생각할 때 예능처럼 내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할 수도 없고, 음악프로도 그 숫자가 적다보니 운신이 폭이 자꾸만 좁아지는 게 사실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음악을 내 위주대로 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을 얘기하기도 했다. “전 세대가 알아주는 노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소년 소녀부터 장년의 어른들까지 기억하고 좋아하는 그런 노래. 전 제 노래가 엄마 아빠와 아이들이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소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사항’이 그랬죠. 꼭 ‘희망사항’같은 노래는 아니더라도 부모 자식간의 대화가 되는 소재가 될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제 노래가 특정 세대에게만 사랑받는 게 아니라, 10대 자녀들과 40대 부모들이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소재나 음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스포츠투데이 황용희 기자 he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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