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국정감사를 무난히 마무리한 여야가 정기국회 하반기 시작부터 격돌했다.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돌입하면서 '4대강 사업'과 사정 정국 등을 둘러싸고 여야 대치가 예상됐지만, 의외로 복병은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법 처리가 됐다. SSM규제법 중 하나인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처리가 무산되면서 여야 관계가 벼랑끝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당초 여야는 25일 본회의에서 유통법을 처리하고, 대·중소기업상생법(상생법)은 정기국회 회기(12월9일) 중에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상생법 처리에 난색을 표시하면서 민주당이 여야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유통법은 이날 본회의에 상정도 못하고 처리가 무산됐다.
한나라당은 지난 22일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회담에서 유통법 처리를 합의한 만큼 26~27일 사이 유통법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26일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오늘과 내일 중에 유통법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민주당 내부 분위기가 유통법 처리에 반대하고 있지만 처리키로 합의한 만큼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상생법 처리에 대한 보장이 없으면 유통법 우선 처리도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 완고하다. 전현희 민주당 대변인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상생법 통과와 중소기업청의 (상생법과 동일한 효력의)지침을 개정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다면 SSM규제법 분리 처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여야 합의를 깨고 입장을 선회한 데에는 김종훈 통합교섭본부장의 발언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김 본부장이 전날 본회의 직전 민주당 자유무역협정(FTA) 특위 간담회에 참석해 상생법 처리시 유럽연합(EU)과의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며 상생법 처리에 부정적 의사를 거듭 밝혔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유통법만 우선 통과시킬 경우 나중에 상생법 처리를 보장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여야가 합의한 만큼 정기국회 회기내 상생법 처리는 무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에서 유통법 처리가 무산되자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특정한 입장인 통상교섭본부장의 이야기만 듣고 여야 합의를 깬 것은 잘못"이라며 "올해 안으로 유통법과 상생법을 모두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한나라당이 정부와 정책 조율 없이 여야간 상생법 처리를 합의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당의 경우에도 당내 진보진영과 시민단체와 협의 없이 SSM 규제법 분리 처리를 약속한 원내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야가 SSM규제법 처리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면서 정기국회 회기내 유통법을 비롯해 내년도 예산안 등 핵심 쟁점들이 해결되기는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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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진 기자 g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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