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김승미 기자]정부가 12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성장ㆍ고용ㆍ복지의 조화를 위한 국가고용전략 2020'은 '고용 창출을 통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으로 공식 전환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자 그대로라면 저출산 고령화에 고용없는 저성장기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성장, 고용, 복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의 핵심도구가 될 재정지원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데다 노동계, 산업계 모두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자칫 양립하기 어려운 성장, 고용, 복지 어느 것도 잡지 못하는 3각 딜레마, 소위 트릴레마(trilemma)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2020 고용전략 왜 나왔나=정부가 이날 내놓은 대책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장기화되면서 일자리 창출 동력이 떨어졌다는 위기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의 고용률(15~64세)은 62.9%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4.8%) 보다 낮다. 여성고용률도 우리나라가 52.2%인데 반해 OECD 평균은 4.3%포인트 56.5% 이다. 경기 회복의 과실이 대기업 등 일부에만 집중되면서 청년, 중소기업 근로자, 근로빈곤층의 형편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도 높다.
대기업과의 불공정 거래 관행 탓에 중소기업의 고용여건이 나빠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ㆍ복지 혜택의 격차가 발생하는 '이중구조화'가 심화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실제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 비중은 2000년 70.8%에서 2009년 65.5%로 10년 만에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일자리를 통한 빈곤탈출 등 고용과 복지의 연계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고려됐다.
◆세마리 토끼 다 잡을 대책은=정부는 이에 따라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국민이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고용 친화적 경제ㆍ산업 정책 ▲공정ㆍ역동적인 일터 조성 ▲취약인력 활용과 직업능력 개발 강화 ▲근로 유인형 사회안전망 개편 등 4대 전략을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5대 실천과제로는 민간이 주도하는 일자리 창출과 공정하고 역동적인 노동시장 구축, 일ㆍ가정이 양립하는 상용형 일자리 확대, 생애 이모작 촉진,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 등이 제시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앞으로 10년간 연평균 24만여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작년 말 현재 62.9%에 머물러 있는 15~64세 고용률을 2012년 64%, 2020년에는 선진국 수준인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민간과 지자체의 일자리창출 협력을 독려키로 하고 주요 국책사업의 고용영향평가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민ㆍ관 일자리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일자리를 많이 창출한 100대 기업을 매년 선정ㆍ공표하고 연말에 포상도 해준다. 청년층의 중소기업 기피 요인으로 지적돼 온 하도급 고용문제와 파견ㆍ기간제 고용규제, 장시간 근로 관행도 차츰 개선하기로 했다. 건설업종의 고질적 문제인 노무비 삭감, 유보임금, 숙련 기능인력 부족, 불법 외국인 고용 등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방안도 다음 달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고용부는 정부발주 공사의 노무비를 공사원가에 사전 반영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관광업 등에서 근로시간을 계절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하도록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린다. 연장ㆍ휴일ㆍ야간 근로시간을 휴가로 보상받거나, 사용한 휴가를 연장ㆍ휴일ㆍ야간연장 근로로 대체하는 '근로시간저축휴가제'도 도입된다.
현행 32개 파견 업종 중 특허전문가, 여행안내원, 주차장 관리요원 등은 제외하고 제품ㆍ광고 영업, 경리사무, 웨이터 등을 추가해 내년 상반기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설기업이나 청소ㆍ경비직은 기간제근로자 사용기간(2년) 규제의 예외대상으로추가할 방침이다.
선진국보다 현저히 적은 시간제 일자리를 상용직(무기계약직) 중심으로 확대해 여성의 일ㆍ가정 양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내년 상반기 시간제 근로자 수요 촉진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현재 6세까지인 육아휴직대상 아동 연령을 재원분담방안 등을 고려해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55세이상 고령자의 고용을 연장하는 '생애 이모작' 관련해서는 근로시간 단축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 소정 근로시간이 가장 많은 때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들면 정년연장 임금피크제보전수당의 50% 수준(1인당 연간 300만원)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이다. 50세 이상 고령자를 단시간 근로자로 전환하면 소득 감소분을 지원하는 제도를 내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 토끼 다 잡나 다 못 잡나=정부의 이날 발표에 대해 전문가들과 노동계,산업계에서는 정부의 재정투입에 대한 언급 없이 무작정 복지도 늘리고 일자리도 늘리겠다는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단시간 근로 확대에 대해 고용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사업주들은 반대로 복지확대에 대한 부담감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 몇년 전부터 정부가 강조해온 보 임금은 실천적으로 집행하는 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고용전략이 " 질 좋은 고용 창출이 아닌 단기 임시 근로자 창출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실업자들이 중소기업 일자리가 질이 낮아서 취업하지 않는데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법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 파견 확대는 오히려 고용의 질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노동전문가는 여성들을 위한 상용제 일자리 정책과 관련, "보육은 사회책임인 동시에 국가책임인데 보육에 맞춘다고 일자리와 근무시간을 줄이면 여성 일자리가 향후에 이런 모습으로 고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과 지자체, 사회에 일자리 창출은 물론 일자리 유지와 근로복지, 성장 등 모든 것을 떠 맡기려는 느낌이 든다"면서 "인재채용은 양보다 질이 우선인데 계약형태와 근무조건을 다양화해서 일자리 양만 늘린다고 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좀 기다려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주무현 고용정보원 고용대책모니터링센터장은 "일단 방향성은 맞다고 본다. 국가전략차원에서 발전 승화시켰다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짜깁기, 재탕이라는 지적과 관련, "정책패러다임이 변하지 않는 한에서는 한계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며 "연결선상에 봐야 할 문제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또 "고용정책의 총괄부서인 고용노동부가 국가고용전략에 쓰일 '실탄'을 직업능력개발용으로 적립된 고용보험기금에 대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재원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숙제도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
김승미 기자 ask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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