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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책의 운명

시계아이콘02분 12초 소요

지갑에서 돈이 사라지고 플라스틱 카드들만 가득한 시대입니다. 자신의 손 때가 묻은 책을 본다는 것은, 마치 지갑속의 현금을 보는 것처럼 지난 시절의 흔적을 확인하고 위안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말기 암 환자들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여생을 살아가듯이 정들었던 종이책도 그런 시한부를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전자책은 얼마만큼 빠르게 종이책의 시장을 잠식해 올까요?

아마존의 킨들(Amazon Kindle) 이란 이름은 아마존 정글에서 사는 악어의 이름이 아니라, 아마존 닷컴에서 개발한 한 뼘 정도 크기의 전자책 전용단말기 고유명사입니다. 이 킨들은 수차례나 업그레이드를 거쳐서 다운로드 없이 인터넷 웹상에서 바로 읽을 수 있고, 우리 돈 15만원쯤에 판매된다고 합니다.


종이책을 읽는 것처럼 눈의 피로감을 줄이고 햇빛의 반사각을 피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서 MP3처럼 대중화된 e-북 리더기로 판매되고 있으며, 이미 서울의 지하철에서 그 기기로 책을 읽는 외국인들도 종종 목격됩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그냥 ‘책’으로 통용되던 단어가 이제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구분해서 불러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둘은 당분간 공존하겠지만 전자책이 기존 책보다 작고 가벼워서 점점 종이책이 밀려날 추세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카메라 필름이 사라지듯이 말입니다. 반면에 그런 우려는 10여년 전부터 있었다며 강력하게 종이책의 장수를 변호하는 분들도 아직 많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앞으로 10년 내 전체 책 중에서 종이책의 비율은 4분의 1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종이책이 사라지면 종이책을 만드는 출판사의 변신도 불가피할 것입니다


1판, 2판으로 판을 거듭하며 역사가 되고 1쇄, 2쇄로 신나게 돌아가던 윤전기의 소음이 점점 사라진다는 사실은, 종이신문의 발행부수가 줄고 대신 전자신문이 자리잡아가는 변화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혁신(革新)’이라는 이 벅차고 당찬 단어- 하필이면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는 일에 ‘가죽 혁(革)’자를 썼을까요? 춘추전국시대 중국은 대나무(竹簡=죽간)로 엮은 책을 얼마나 많이 반복해서 읽었느냐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정해지는 시대였습니다.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읽을 때 세 번이나 죽간의 끈이 끊어질 정도로 손에서 놓지 않아 후학들에게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교훈을 남겼지요. 그래서 ‘혁신(革新)’은 가죽 끈이 헤진 죽간을 다시 붙들어 매듯이 마음을 다잡고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전자책의 등장은 수많은 출판사와 서점들에 그런 혁신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미국 최대 서점이었던 반스앤노블도 할 수 없이 직접 전자책 단말기인 ‘누크’(Nook)를 개발하여 재기를 도모중입니다. 출판사가 다른 수익원으로 생존할 수는 있지만 소극적인 대응으론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지요.


터치프레스(Touch Press)라는 회사는 원소의 주기율표를 쉽게 기억하도록 만든 종이책 엘리멘트(The Element=원소)를 전자책으로 변환시켜 출시했습니다. 그걸 시판중인 아이패드의 멀티미디어 기능을 활용하여 서비스 한 결과, 아이패드의 앱스토어에 올린 지 하루 만에 5년 동안 서점에서 팔았던 수익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인건비와 인쇄와 유통에 따르는 비용 절약도 한 요인이죠.


위 사례는 출판업도 전자책시대를 활용하면 승자가 될 기회가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작가들 역시 전자책 시대가 오면 출판사의 매개가 없이 직접 출판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겠지만 원고를 다듬어 완성도를 높여주는 출판사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책을 지식충족의 도구로만 기능을 한정하면 미래가 없습니다. 한 때 여대생들이 가슴에 책을 안고 다녔던 시절에는 책 자체가 학생과 직장인이란 신분의 경계를 의미하는 일종의 소품이었습니다. 읽지도 않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 전집류들이 아파트 거실을 장식하던 시대도, 어떤 의미에선 책이 인테리어 소품으로서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였습니다.


둘러앉아서 담요를 깔고 고스톱을 쳤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문화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PC와 휴대폰을 들고 그 유희를 계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오고가는 현찰대신 사이버머니에 만족하며 말입니다. 바둑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비록 화투와 바둑판을 만들었던 제조업은 몰락했지만 그 놀이를 서비스하는 게임 업체가 등장해 세계라는 더 큰 시장을 상대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위기가 기회로 연결된다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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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높고 파란 하늘과 살찐 말도 떠올리지만, 단풍과 낙엽 그리고 독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인생을 바꿨다는 전설과, 사람이 책을 만들었지만 책도 사람을 만들 수 있었다는 신화도 머잖아 옛이야기로만 남을지 모릅니다.


설사 스마트폰을 통해서 모든 길을 다 검색해 낼지라도, 여전히 책 속엔 우리가 필요한 다른 길이 남아 있습니다.






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hanmail.net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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