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포스텍, 세계 대학 28위의 비밀](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0092711380217487_1.jpg)
[교육 뉴스 돋보기]포스텍, 세계 대학 28위의 비밀
- '더 타임즈' 세계대학평가서 전체 28위…국내 대학 사상 최초 20위권 진입
김석민(32)씨는 포스텍 화학공학과 석ㆍ박사 통합 과정에서 6년째 연구중이다. 그는 올 추석 연휴도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연구 도중 생명체 내에서 예상치 못했던 물질인 '글라이세롤'이 나와 구조 분석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미궁에 빠진 연구는 늘 그를 흥분하게 만든다.
24일 오후 찾은 포스텍 생명과학관 2층 분자신경생리학 연구실에서는 김도연(29ㆍ 석박사 통합 6년차) 연구원과 나경윤(27ㆍ 석사 2년차) 연구원이 세포 내 단백질 위치 규명을 위해 한창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연구실로 불쑥 찾아가 만나본 정석민 물리학과 교수는 뜻 밖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 평가가 교수, 학생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교수들은 평가와 관계 없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따름이라고도 말했다. 그 결과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투다. 휴일에도 연구실에 나오느냐는 물음에 정 교수는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늘 연구실에 나온다"고 말했다. 포스텍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고 교수들도 교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는 "오면서 봤겠지만 따로 떨어진 공간에 학교가 자리하고 있어 연구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추석을 잊고 연구에 몰입하는 이런 모습이 포스텍을 세계 28위의 대학에 서게 했다. 영국 '더 타임즈'가 실시한 2010년 세계대학평가에서 이룬 쾌거다. 더 타임즈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그 동안 세계대학평가를 실시한 이래 국내 대학이 20위권 이내에 진입한 것은 포스텍이 사상 처음이다.
이번 대학 평가에서 미국의 하버드대가 1위를 차지했다. 칼텍,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스탠포드대, 프린스턴대가 그 뒤를 이어 미국 대학이 최상위 5개를 모두 휩쓸었다. 아시아권 대학에서는 홍콩대 21위, 도쿄대 26위, 싱가포르 국립대가 34위에 올랐다. 한국은 포스텍의 뒤를 이어 KAIST 79위, 서울대 109위, 연세대가 190위 등 200위권 이내에 4개 대학만이 이름을 올렸다.
더 타임즈는 "엄격한 기준으로 진행된 이번 평가에서 200위권에 든 세계의 대학 가운데 28위를 차지한 포스텍의 성과는 매우 놀랍다"며 "이 순위에 들었다는 것은 진정으로 세계적 수준(truly world class)에 도달했다는 의미"라고 포스텍을 치켜 세웠다. 대학 평판도와 연구 부문의 양적인 성과에 큰 비중을 뒀던 예년과 달리 이번 대학 평가에서는 대학의 연구 및 교육 역량과 질적인 성과에 대한 비중을 크게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성기 포스텍 총장은 "이번 세계대학 평가는 포스텍이 그동안 양적인 성장보다 질적인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것을 제대로 인정받은 것"이라며 "포스텍이 명실공히 국가와 인류에 크게 공헌하는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무엇이 포스텍을 설립 4반세기 만에 세계적인 대학으로 올라서게 한 것일까?
◆ 우수 연구인력 초빙과 연구 지원이 기둥 = 이번 평가 결과에 대해 대학 측은 우수 연구인력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자평했다. 포스텍 관계자는 "개교 초기부터 포스텍은 우수 교수를 유치하는 한편 석학 교수를 적극 초빙해 교원의 수월성을 구축해 왔다"고 설명했다. 엄격한 정년 보장 심사제도로 교수들의 교육ㆍ연구 수월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연구 인력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연구 활동을 적극 장려해 왔다는 것.
이런 결과는 연구 성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포스텍의 SCI급 논문 수는 2005년 939건에서 2009년 1394건으로 1.5배 가까이 늘었다. 논문당 인용수(Citation per Papre)는 2005년 6.51수준에서 2009년 10.94로 급상승했고 논문당 인용지수(Impact Factor per Papre) 역시 2005년 2.15, 2007년 2.4, 2009년 2.94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포스텍은 논문 인용 지수의 경우 상대 평가로 진행되는 세계대학평가에서 90점 이하를 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세계 상위권으로 평가됐다.
포스텍 측은 "김광수 화학과 교수, 남홍길 생명과학과 교수 등 국가 과학자 2명을 보유하고 있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피인용 횟수를 기록한 바 있는 화학과 김기문 교수 등 최고의 교수진을 통해 영향력이 큰 연구성과를 대거 발표해 왔다"면서 "화학과의 경우 아시아에서 최고의 연구실적을 올린 것으로 소개되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연구성과의 바탕에는 첨단 연구 인프라도 자리하고 있다. 포스텍은 올해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 연구기관인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유치했고 지난 1994년에는 국내 유일의 가속기연구소인 포항가속기연구소를 준공하기도 했다. 국내 대학 최대 규모의 생명공학연구센터, 나노 기술 개발 핵심 연구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포항나노기술집적센터, 국내 유일의 지능로봇 전문 독립 연구기관 포항지능로봇연구소 등도 포스텍의 자랑이다.
◆ 최고 수준의 재단 지원과 1인당 교육비 = 이런 역량의 바탕에는 역시 막강한 자금력이 있다. 포스텍이 1986년 개교할 때의 설립 주체는 잘 알려진 대로 포스코다.
1995년에는 재단이 분리됐지만 포스코의 기초 출연을 바탕으로 한 재단(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의 자산규모는 현 시세로 1조5000억원에 이른다. 포스코 관계자는 "매년 재단 전입금을 포함해 700억원 이상의 돈이 재단에서 학교로 지원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두산이 학교법인 경영에 참여하면서 조명 받고 있는 중앙대학교의 법인지원금이 2008년 118억원, 2009년 441억원, 올해 847억원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매년 국내 최대 수준의 자금 지원이 이루어졌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포스텍은 신입생 정원이 300명에 불과한 대표적인 '소수 정예'형 대학이다.
이런 투자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포스텍은 압도적인 학생 1인당 교육비를 기록하기도 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4월 최초로 공개한 '2008년 등록금 및 학생 1인당 교육비' 자료에 따르면 포스텍은 학생 1인당 6370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나 전국 대학들 가운데 학생 1명에게 가장 많은 교육비를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173개 일반 대학의 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는 평균 979만원이고 서울대는 2598만원, 연세대는 2362만원 수준에 그쳤다.
◆ 평판도 비중 크게 줄고 객관적 기준 활용해 순위 변화에 영향 = 올해 급격한 순위 상승에는 평가 기관과 평가 방식 변경도 한 몫을 했다.
'더 타임스'는 2010년 대학평가부터 QS가 아닌 캐나다의 연구평가기관 톰슨-로이터 사와 세계대학평가를 공동으로 실시했다. SCI(과학인용색인)를 관장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는 톰슨-로이터사의 참여로 이번 평가는 틀이 완전히 새로워졌다. 이번 평가는 평가기준이 ▲교육(30%) ▲연구(30%) ▲논문인용도(32.5%) ▲기술이전 수입(2.5%) ▲국제화(5%) 등 5개 분야로 구성됐다.
포스텍 측은 "QS사가 주관했던 기존의 평가에는 역사가 깊고 졸업생 수가 많은 종합 대학에 유리한 평판도에 대한 평가(50%)가 큰 비중을 차지했던 반면 이번 평가는 평판에 대한 평가 비중이 줄고, 보다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평가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연구 중심 대학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포스텍은 교육, 연구, 논문인용도, 연구비, 국제화 등 5개 평가영역에서 골고루 우수한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연구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성과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인용-연구 성과 영향력(Citation-research influence)' 부문에서는 96.5점을, 기술이전 수입을 평가하는 '기술이전 수입-혁신(Industry income-innovation)' 부문에서는 만점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평판'보다 내용과 질적 발전을 중시하는 새로운 세계대학평가 방식이 도입되면서 이제 대학들은 오랜 전통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혁신과 변화를 통한 질적 경쟁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는 것이 이번 세계대학평가를 바라보는 학계의 중론이다.
포항=김도형 기자 kuer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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