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19일 대구구장의 밤은 감동에 휩싸였다. 경기 전 시종일관 미소를 보였던 양준혁(41, 삼성). 하지만 은퇴식에서 그는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이내 내린 장대비. 하늘도 울고 관중도 울고 양준혁도 울었다.
지금껏 이 같은 은퇴식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정도로 감동의 드라마였다. 3-0 SK의 승리로 끝난 경기. 양준혁은 4타수 무안타 3삼진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경기 뒤에도 그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자신만을 위한 은퇴식. 모든 조명이 꺼지고 이내 단 하나의 레이저빔만이 양준혁을 밝혔다. 곧 팬들은 하나된 목소리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위풍당당 양준혁. 위풍당당 양준혁.”
하지만 무대의 주인공은 당당하지 못했다. 연신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 울려 퍼지는 프랭크 시네트라의 ‘마이웨이.’ 각양각색의 막대 등을 흔들어대는 1만여 팬들의 성원까지 더해지자 양준혁은 이내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의 울음은 이후에도 그칠 줄을 몰랐다. 이어 흐르는 이선희의 ‘석별의 정’에 대구구장을 이내 눈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 눈물 바이러스 탓일까. 하늘에서 비는 더욱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양준혁의, 양준혁에 의한, 양준혁만을 위한 순간이었다.
이어지는 눈물의 고별사. 양준혁은 “2010년 9월19일 바로 오늘까지 저 야구선수 양준혁을 응원해주셔서 고맙다”고 운을 뗀 뒤 “야구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야구선수로서 참 행복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모든 스포츠에서 그렇듯이 선수로서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가질 수 있는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에 대한 여운도 함께 털어놓았다. 양준혁은 “많은 분들이 더 뛰어야 하지 않냐고, 또 더 뛰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다”며 “현역선수로 더 뛰고 싶었지만 벤치를 지키며 선수생활을 연장하기보다는 팬 여러분께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때 떠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결정해 미련 없이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곳 대구, 라이온즈에서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해서 행복했다”며 “이제 오늘 고향 품에서 떠날 수 있게 돼 더더욱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눈앞으로 다가온 제 2의 인생 길. 그는 새로운 도전에서도 야구에서처럼 승승장구를 기약했다. 양준혁은 “이제는 선수가 아닌 인간 양준혁으로 새로운 인생을 향해 또 다른 출발을 하려 한다”며 “앞으로 어떤 인생항로가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성공을 향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양준혁에게 베풀어 준 사랑과 성원을 이제는 열심히 뛰며 땀 흘리는 라이온즈 후배 선수,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야구선수들에게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다.
고별사를 읊으면서도 그칠 줄을 모르고 흐르는 눈물. 얼굴에 미소를 되찾은 건 그간 고생을 함께 나눈 팀 동료들에 둘러싸였을 때부터였다. 삼성의 전 선수들은 홈베이스 근처로 옹기종기 모여 헹가레를 치며 노장의 은퇴를 아쉬워했다.
양준혁은 고참으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그들을 하나하나 부둥켜안아주며 격려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대구구장을 한 바퀴 돌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내 굵어진 빗줄기. 양준혁은 그 사이를 뚫고 조금씩 역사의 뒤로 사라졌다. 어둠 속으로 이내 자취를 감춘 ‘푸른 피의 사나이.’ 그가 쓴 18년 간의 전설은 그렇게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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