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너무 과했다.
6년 만에 부활한 한일프로골프국가대항전 이야기다. 이 대회는 여자프로골프 한일전과 맞물려 국내팬들의 '기대치'를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지난 3월 대회 창설이 발표되자마자 곧바로 최경주(40)와 양용은(38) 등 '원투펀치'는 물론 '아이돌스타' 노승열(20)까지 국내 최강의 라인업으로 대표팀을 구성해야 된다는 여론이 팽배한 것도 이때문이었다.
타이틀스폰서인 현대캐피탈로서는 '즐거운 비명'을 지를 법도 했다. 여느 대회와 달리 '국가대항전', 그것도 국내 팬들로서는 민감하기 짝이 없는 일본과의 맞대결이다. 가만히 있어도 '월드스타'들이 출전하고, '국가대항전 효과'에 힘입어 저절로 흥행이 될 것 같은, 대회 마케팅으로서는 엄청나게 탁월한 아이템을 손에 쥔 셈이었다.
현대캐피탈은 그러나 자만했다. 대회 일정부터 '제멋대로'였다. 12일 제주 해비치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이 대회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페덱스컵, 이른바 '플레이오프 3차전'인 도이체방크챔피언십과 겹치는 기간이다. PGA투어가 주무대인 최경주와 양용은에게 이 대회를 포기하고 한국에 오라는 것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노승열도 마찬가지다. 메이저대회를 통해 '차세대 월드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는 노승열은 내년 본격적인 PGA투어 입성을 위해 현재 '낯설고 물 설은' 유러피언(EPGA)투어에서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승열이 '아직 어려서' PGA투어 진출은 다음에 해도 충분하다고 했다. PGA투어 입성이 왜 '지옥의 레이스'인지도 모르는 몰지각한 소리다.
코스도 최악이었다. 대회가 열린 제주 해비치골프장은 현대캐피탈의 계열 골프장이다. 이 기회에 골프장까지 홍보 할 수 있어, 그야말로 '꿩먹고, 알까지 먹을 수 있는' 호기였다. 하지만 가뜩이나 코스 관리가 시원찮은 이 골프장은 폭우가 쏟아지자 곧바로 황폐해졌고, 경기위원회는 결국 후반 9개 홀을 '두 바퀴'도는 고육지책을 선택했다.
하이라이트는 선수들 모자의 로고였다. 현대캐피탈은 오래전부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를 통해 선수들의 소속사에 "모자와 골프백에 소속사의 로고를 달 수 없다"는 공문을 보내 양해를 구했다. 적어도 양국의 국기나, 아니면 라이더컵과 프레지던츠컵과 같은 독특한 로고가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작 대회가 열리자 선수들의 모자에는 현대캐피탈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국가대항전'을 빌미로 수억원씩 투자된 선수들의 소속 로고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자사의 로고를 붙이는 '얄팍한 상술'이 극대회되는 순간이었다. 배상문(키움증권)과 김경태(신한금융그룹), 이승호(토마토저축은행) 등 주력선수들 소속사는 더욱이 경쟁 업종이다. 올해는 그렇다 치고, 내년의 '국가대항전'이 더욱 걱정되는 까닭이다.
골프전문기자 golf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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