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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지난 3월 29일 잠실구장.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마운드에 선 유창식(광주제일고)은 펄펄 날았다. 자원한 선발 등판에서 9이닝을 3안타 3볼넷으로 막고 1-0 완봉승을 따냈다.
경기 뒤 그는 곧장 관중석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었다. 어머니 최숙자씨였다. 유창식은 이내 따뜻한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창식은 효자다. 어머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6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나뿐인 살붙이인 어머니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후 인생의 모든 시간을 아들에게 쏟아 부으며 악착같이 버텼다.
졸지에 집안의 가장이 된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오리고기 식당, 호프집 등을 운영하며 아들의 야구부 생활을 지원했다. 옷 하나 살 수 있는 여윳돈이 생기면 바로 시장에 들렀다. 운동선수에게 좋다는 장어를 구입해 아들의 입에 넣어줬다.
어머니의 피나는 노력은 아들의 성숙을 부추겼다. 유창식은 “어머니가 식당일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며 “야구를 열심히 해서 꼭 보답해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무등중학교 3학년에 오르면서 그는 신발 끈을 꽉 졸라맸다. 남들보다 더 많은 훈련을 소화하며 기량을 갈고닦았다. 연습을 마치고 귀가할 때마다 달은 늘 중천에 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올 때까지 잠에 들지 않았다. “먼저 좀 주무세요”라고 말하는 아들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고 나서야 겨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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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의 고생은 3년 뒤 빛을 발휘했다. 각 프로구단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여기에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구단도 4곳이나 포함됐다.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 시카고 컵스. 갑작스런 스카우트들의 관심에 유창식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온 보스턴 레드삭스의 달콤한 제의는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전부터 빨간 유니폼을 입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남겨두고 홀로 미국으로 떠날 수 없었다.”
계약서에 사인만을 남겨놓았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되돌렸다. 지난 5월 대통령기 고교야구대회 뒤 국내에 남기로 최종 결정했다. 어머니 최숙자씨는 자신이 아들의 꿈을 막은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내가 아들의 발목을 붙잡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내서 성공을 거둔 뒤 나중에 진출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모자의 바람은 지난 16일 서울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2011 프로야구 신인 지명회의'에서 그대로 이뤄졌다. 전체 1순위로 한화의 부름을 받았다. 유창식은 “열심히 노력해 프로야구계에 이름 세 글자를 남기는 투수가 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았다. 유창식은 “계약금으로 어머니에게 아늑한 집을 선물하고 싶다”며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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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맞이한 프로 데뷔. 하지만 그에게는 최근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앞으로 뛰게 될 한화의 연고지는 대전이다. 그는 아직 어머니와 머물 집을 구하지 못했다.
“지난 번 대전에 들렀을 때 부동산을 돌며 아파트를 물색했는데, 마땅한 곳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얽혀있던 ‘가장’의 사슬은 어느덧 19살 청년에게로 옮겨졌다. 한결 무거워진 어깨. 하지만 유창식은 방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의 은혜 덕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보답의 시간이 왔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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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 기자 leemean@
사진 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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