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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무너진 사회 교육을 다시 세우자⑧] 자격증 취득에 바쁜 대학

취업에 내몰리는 학생ㆍ평가와 인증에 목매는 대학, 대학교육 왜곡 연출한다

[상식이 무너진 사회 교육을 다시 세우자] 8회


[아시아경제 강정규 기자] # 경원대학교 역사ㆍ철학부에 다니는 이모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이번에 복학한다. 하지만 3년 만에 돌아온 학교에는 함께 수업 들을 동기도 선ㆍ후배도 없다. 지난 2003년 학교로부터 사실상의 학과 폐쇄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경원대 역사ㆍ철학부 학생들은 2002년부터 심화된 인문학 교육을 받기 위해 역사와 철학의 전공 분리와 커리큘럼의 보강을 끈질기게 요구했었다. 그러나 학교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엉뚱하게도 신입생 모집 중단이란 조치였다. 경원대는 2001년부터 경원전문대와의 통합을 준비해왔으며, 2007년 3월부로 통합이 완료되기까지 37개의 비인기 학과 및 전공과 1807명의 정원을 감축하는 대수술을 벌였다.

인문학을 비롯한 순수학문이 대학에서 내몰리고 있다. 문학·사학·철학 등 이른바 비인기학과의 학생들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논리에 의해 본인의사와 상관없이 타학과에 통폐합되는 설움을 겪고 있다.


◆ 설움 받는 비인기 학과 = 경원대처럼 비인기학과를 통폐합하는 학교들이 부지기수다.

동국대는 2007년 바이오ㆍ문화ㆍIT산업에 특화하겠다는 '108프로젝트'에 따라 기존 60여개 학과를 2~3개씩 묶어 학부로 통폐합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독어독문학과와 북한학과를 포함한 6개 단과대학 소속 학생 600여명은 학교정책에 반발하여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부산 동의대도 철학과와 윤리문화학과를 철학윤리문화학과로 통합하면서 정원을 20명 줄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역시 지난해 '한예종사태'와 함께 한국예술학과·서사창작과 등 12개 이론관련 학과통폐합문제가 쟁론화 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중앙대가 실용학과를 중심으로 한 학문단위 재편성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 대학생, 전공 공부할 시간이 없다 = 인문학 등 순수학문의 홀대가 대학이나 교육당국만의 책임은 아니다.


대학들이 구조조정의 명분을 사회적 수요에서 찾고 있듯이, 이른바 비인기 학과라는 말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순수학문 기피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취업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학생들의 '스펙(specification)' 경쟁은 치열하다. 입시과정에서부터 대학 및 학과의 취업률이 중요한 고려대상이 됨은 물론 입학과 함께 취업의 압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황순영(가명·25) 씨는 "공인외국어성적표부터 한자능력검정, 컴퓨터관련 자격증은 기본이고, 최근에는 경제이해능력시험, 한국사능력검정까지 생겨났을 정도"라며, "여기에 해외연수에 인턴 및 사회봉사 경험까지 갖추려면 4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어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김상순(가명, 28)씨는 "회계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3년 동안 공부했다"며 "수험과목이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전공 공부는 학점 관리하는 선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 소재 대학 역사학과의 한 교수는 갈수록 심화 수업을 하기 어려워진다고 털어놨다. 그는 "진로를 떠나 학생들이 역사 전공자로서 갖추어야 할 일정 수준이 있고 그를 위해 수업의 난도와 학생들에 대한 요구조건을 높여야 하는데, 배우려는 욕심보다는 학점관리에 급급해 어려운 수업을 기피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고 하소연했다.


게다가 2004년부터 각 대학에서 도입하기 시작한 대학졸업인증제가 실시되면서 학생들은 졸업논문을 쓰지 않아도 공인영어성적 등 수치화된 지표만 있으면 졸업이 가능하게 됐다.


◆ 취업과 자격증 취득에 내몰리는 학생들 = 이처럼 학생들은 취업과 자격증 취득으로 내몰리고 있다.


와이비엠 시사 어학원(YBM Si-sa)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2008년 정기 토익(TOEIC) 응시자 수는 189만6972명으로 이 가운데 졸업 및 취업을 위해 응시한 수험생은 60%에 가까운 112만4904명으로 집계됐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8년 대학생 수는 약 240만명이었으며, 해외 유학생은 21만여명으로 조사됐다.


대학생의 절반이 공인영어성적에 매달리고 있으며, 10명 중 1명 꼴로 해외연수를 떠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제2외국어 및 각종 자격증 취득 그리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까지 고려하면 마음 편히 전공 공부에 집중하는 대학생이 몇이나 될까 의심된다.



◆ 대학도 자격증 따야 살아남는다 = 자격증 취득에 골몰하는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다. 대학 역시 각종 인증을 받기 위해 막대한 인적ㆍ물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영학교육인증제도. 한국경영교육인증원에서 주관하는 제도로 세계경영대학협회의 경영교육국제인증(AACSB)과 같이 대학의 경영학 교육상황을 평가하고 인증하기 위해 마련됐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경인원에서 제시한 교육과정과 수업, 학생, 교수, 시설 및 교육환경 등 7개 분야에 대한 계량지표를 제시해야 하며, 이후 각 대학의 자체평가보고서에 의한 예비심사와 실사를 거쳐 최종 인증(3등급 또는 보류)을 받게 된다. 인증은 5년 간 유효하며, 예비등급을 받게 될 경우 2년 이내에 재심사 또는 자체평가보고서 제출이 요구된다.


이와 유사한 제도로 공학교육인증제가 있다. 미국의 공학교육인증제도인 ABET을 모델로 공학교육에 대한 평가와 인증을 통해 수요자(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검증된 공학도를 배출하겠다는 것이 시행 취지다.


시행기구인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Accreditation Board for Engineering Education in Korea)은 삼성전자, 현대건설, SKT 등 산업체와 학계 및 정부기관의 참여로 설립됐으며, 이사장은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이 맡고 있다.


두 제도는 최대 2500만원에 달하는 인증비용에도 불구하고, 최근 삼성그룹을 비롯한 기업체 채용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이 가시화 되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학 및 일선 교원들은 인증제도에 맞춰 강의계획서를 작성하고 강의기법을 연구해야 하며, 학생평가와 설문조사 개선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등 사실상 산업계가 대학교육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밖에도 1994년 이래 실시되어온 중앙일보대학평가나 대학교육협의회가 7년 단위로 실시하고 있는 대학종합평가, 2008년 실시된 산업계관점대학평가 그리고 작년 시행된 대학역량강화사업 등은 모두 취업률 및 실용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대학교육의 기능화를 부추기고 있다.


한 지방대학의 관계자는 “대학평가 자료가 우수신입생 유치는 물론 교육역량강화사업 같은 국고지원금 확보에 영향을 끼친다”며 “투자확대와 우수신입생유치 그리고 취업률상승과 대학평가결과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대학평가나 교육인증제에 목맬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털어놨다.


대학교육협의회 김병주 사무국장은 “학생에 이어 대학까지 자격증 취득에 골몰하는 현실이 교육기관으로서 대학 본연의 기능을 왜곡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대학에 요구되는 학문적 기능과 인재양성이라는 사회적 요구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립대학이 취업률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국공립대학이 순수학문 분야에 좀 더 무게를 둠으로써 역할 분담을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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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규 기자 k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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