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공포완행열차가 정차했다. 수많은 납량특집과 간담이 서늘한 기사들이 쏟아졌으니 굳이 본인의 졸필 없이도 그것들이 충분히 사람들을 '만족'시켰으리라 믿는다. 9월이다. 저녁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따뜻함이 조금씩 그리워질 시기이다. 친구를 초대해 맥주와 소시지, 그리고 공포영화로 훈훈한 가을밤을 지새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그럴 때 딱 좋은 '홈파티용' 좀비영화 두편을 소개한다.
오리지널 좀비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좀비'라고하면 느리고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는 살아있는 시체를 떠올릴 것이다. 일반적인 좀비의 개념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란 영화에서 탄생했다.
위키피디아를 참조하자면 좀비 탄생의 배경엔 서인도제도 아이티섬의 비극이 자리한다. 유럽인에게 흑인 노예의 주공급원이었던 아이티섬. 동족을 배반한 주술사가 멀쩡한 사람들을 독한 마약을 사용해 뇌기능을 마비시켜 가사상태에 빠뜨렸다. 그다음 이들을 무덤에 파묻은 뒤 한밤중에 몰래 꺼내 유럽의 노예상인에게 팔아넘겼다는 것이다. 뇌기능이 마비된 이들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어 그저 시키는 일을 꾸역꾸역하는 노예가 됐다. 믿거나. 말거나.
여하튼 이런 슬픈 사연을 가진 좀비가 서양인의 시각에서 재해석되면서 잔인하고 무자비한 현대식 좀비 개념이 잡혔다. 로메로의 영화까지만 해도 둔하고 생각없던 좀비들은 점점 영악한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 '랜드오브데드'에선 살아있는 사람못지않은 영악함을 자랑하더니 '28주후'에선 발에 모터를 단듯 준족을 자랑하게 됐다.
멕시코 국경의 허름한 술집이나 영국의 소도시 등 출몰장소도 글로벌화됐다. 어찌보면 전설의 고향의 명작 '내 다리 내놔'의 한쪽발없는 시체도 좀비의 한 변형이라면 과도한 해석일까.
2009년작 토미 위르콜라 감독의 노르웨이 영화 '데드스노우'는 빠르고 명민한 좀비의 전형을 보여준다. 2차대전 때 눈속에 묻힌 나치잔당이 좀비화 되고 자신들이 감춘 보물을 발견한 남녀 의대생을 공격한다는 전형적 설정이다. 드넓은 설원이 등장하고 하얀 눈 위에 피가 뿌려진다. 도화지 위에 붉은 색으로만 낙서하듯 심플하지만 뚜렷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익숙치 않은 북유럽영화이지만 좀비 내장에 매달려 '클리프행어' 패러디를 연출하는 등 헐리우드 영화못지않게 재치가 넘치는 장면이 많다. 설원을 달리는 좀비들과 지저분한 농담을 일삼는 주인공 패거리를 보며 친구들과 맘껏 웃고 즐기시길.
또 하나의 추천 영화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2004년작 '새벽의 황당한 저주'.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작은 마을이 전염성 좀비로 뒤덮이고 주인공과 그의 죽마고우에게도 위기가 다가온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주위의 지인들을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게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 집으로 초대한 친구들과 맥주 피쳐를 비우고 정신이 가물가물할 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본다면 꽤 감동적일 것이다.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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