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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칼럼] '뉴 재팬'을 다시 보자

일본 자민당의 총선거 참패는 예고된 충격이었다. 1955년 이후 반세기 이상을 집권해 온 철옹성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전직 총리 등 내로라하는 정치인들도 민주당의 신인들에게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자민당의 패배는 장기 경제 침체와 5.7%라는 전후 최악의 실업률, 빈부격차 심화, 정치 리더십의 실종, 세습 정치에 대한 폐해 등 자초한 면이 크다.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자민당을 버리고 스스로 '뉴 재팬'을 선택, 변화의 열망을 표출한 것이다. 민주당이 압승하고도 어깨가 무거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들은 민주당이 집권해도 당장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 보고 있지만 민심이 변화를 원한다는 것을 안 민주당으로서는 과감한 정책 전환을 꾀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다시 승리해 확고한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출범부터 고질적인 병폐를 도려내기 위한 개혁을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이 막대한 재정 투입이 수반되는 공약을 실천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까지는 무척 고단한 여정이 예상된다.

일본의 변화는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은 미래지향적 한ㆍ일관계 설정에 걸림돌이 돼 온 해묵은 과거사 문제를 전향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침략행위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고 총리나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이를 대체할 새로운 추도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회 도서관에 위안부를 포함한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의 진상을 규명할 항구평화조사국을 설치하고 영주권을 가진 재일 한국동포에 지방참정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나 독도나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일이다. 또 새 집권당의 공약이 일본 국민의식까지 바꾸기엔 쉽지 않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총리직에 오를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가 강조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다. 안보 차원에서는 동북아시아의 비핵화를 추진하고 경제 분야에서는 '아시아 공통통화'의 창설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핵이 지역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로 남아 있는 한 공동체 구성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인 납치문제가 걸림돌이지만 대화와 협조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만큼 우리 정부도 북ㆍ일관계가 개선될 수 있도록 부축해야 한다. 또 2006년 첫 논의 후 지지부진하고 있는 공통통화도 금융위기 이후 필요성이 더욱 커진 만큼 전향적 시각에서 신중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세계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 되고 있는 아시아를 상호 협력의 틀로 묶는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로서는 고질적인 무역역조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협력문제도 다급하다. 민주당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과 서민을 중시하고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며 정보기술과 바이오 등 첨단산업과 친환경 녹색산업을 육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우리 제품들의 일본시장 진출에 보다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유독 일본시장에서는 맥을 못 쓰는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산업의 분업화 등도 정부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 하토야마 대표가 밝힌 바 있는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적극적으로 논의할 때다.


일본의 변화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반세기만의 정권교체 이후 나타나는 '뉴 재팬'을 보다 심도 있게 진단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서두를 것까지야 없지만 민주당과 소통할 수 있는 대화채널을 강화하고 그들의 변화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강 건너 불 보듯 어정쩡한 자세를 보인다면 과거사 정리도, 동북아 공조도, 경제 협력도 물 건너가기 십상이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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