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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떠나는 전라도 여행[23]

최금진 시인의 '화엄사 기행<5>

종소리 속으로 들어가라



화엄사 범종각에 종이 울렸다. 저녁 일곱 시가 되어갈 때, 세상의 모든 저녁을 향해 종이 커다랗게 입을 벌려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리던 빗물들이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공중에서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소리에도 여러 겹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종소리의 한 겹을 열어보면 은은한 녹차향이 나지만, 그 뒤에 오는 무수한 소리의 겹 안에는 무수한 글자들이 갇혀 있다가 빠져나온다. 저마다 날개를 달고 공중으로 흩어진다. 어떤 것은 소나무 가지에 가서 앉고, 어떤 것은 산 아래 집들에 내리가도 하지만 더 멀리 구례를 지나 해남 땅끝까지 가는 것도 있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이라는 불교의 일화가 있다. 어느 설법 자리에서 석가모니가 연꽃 한 송이를 들고 침묵하고 있을 때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으나, 십대제자의 한 사람인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지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가섭에게 자신이 죽은 이후 정법을 후대에 전하도록 부탁했다. 어느 날 역시 십대제자인 아난阿難이 부처가 전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가섭은 "가서 깃대를 내려라"라고 답했다. 사원 밖에 깃대를 내리라는 말은 언설을 집어치우라는 뜻이다. 말을 하지 않고서도 그 장엄함과 숭고함에 푹 젖을 수도 있다.

범종각에 종이 울릴 때, 모든 미사여구 아름다운 말들이 입을 다문 채 다만 종소리 속에 향기가 되어 날아다닐 때, 세상의 자질구레한 온갖 거짓말들은 발 아래 툭툭 떨어져 내릴 것이다. 텔레비전에, 신문에, 매일 나타나서는 근엄한 미소를 짓고,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의 말에서 향기를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세상 모든 말들의 허구에 질린 사람이라면 화엄사 범종 소리에 몸을 맡겨도 좋다. 그리로 걸어가 보면 형상은 다 사라지고 숭고함만 피워내는 꽃들이 지천이다.



다시 각황전 석등을 기억하며

아쉽지만 화엄사 이야기를 접어야 할 시간이다. 여행은 끝이 없다. 그것은 인생 자체가 곧 여행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보아도 흥미가 없고, 흥미 있는 것도 그 감동이 오래 가진 않는다. 때가 되면 또 다른 곳으로 발을 옮겨야 한다.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말한 것은 옳다. 그리고 그 말을 다시 곱씹어 보면 어딘가 조금은 아프다. 그러나 어딜 가든 잊혀지지 않는 몇 개의 풍경, 몇 명의 그리운 얼굴들이 있고, 그들을 주축으로 멀리 떠났던 발걸음이 다시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등대의 불빛을 발견하는 사람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


나는 화엄사 각황전 석등을 일생 마음에 두고 살게 될 것이다. 언제든 이쪽을 향해 고개를 들고 추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며, 석등에서 퍼져나가던 환한 빛을 보며 방향을 잡게 될 것이다. 단 몇 개의 풍경이 때론 한 사람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살면서 그런 소중한 풍경들을 더 많이 갖게 된다면 누구나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 다시 나는 여행을 준비한다. 남쪽은 석류가 익어가고 있다. 무화가 열매가 반쯤 벌어져서 달콤한 향을 쏟아낸다. 포도 농원에 가득 열린 포도송이들 사이로 벌들이 날아다닌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지나가고, 콧노래를 하면서 어린 아이가 걸어간다. 구름은 낮게 산 아래까지 내려와 떠다니고 남쪽 어딘가에선 비 소식이 있다. 나는 걸어간다. 그리고 내가 마음을 주고 오래 바라보았던 꽃나무들을 생각한다. 오늘 떠나는 여행은 얼마나 오래 그곳에 머물게 될 지 잘 모른다. 더 멀리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불빛, 인생에서 등대의 불빛을 발견하는 사람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


▷ 화엄사 가는 길
전남 구례군 마산면에 위치한 화엄사는 지리산의 대표적 사찰로 노도간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진흥왕(544년) 때 창건된 이후 정유재란 당시 화재로 소실됐다. 이후 1630년(인조 8)에 벽암대사 중수를 시작해 7년 만에 몇몇 건물을 건립, 폐허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다고 한다.


대웅전(보물 299호) 앞에는 화엄사 각각 보물 132호와 133호로 지정된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이 있으며 옆에는 국보 67호인 각황전이 자리하고 있다. 각황전 앞에도 국보 12호인 석등과 보물 300호인 사자탑이 있다.
화엄사 관람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이며 평일 오후 2시∼4시, 주말 오전 10시∼12시 및 오후 2시∼4시에는 화엄사 사찰문화해설 안내를 무료(5인 이상)로 받을 수 있다.


광주에서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에는 광주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곡성IC로 나가서 곡성읍 → 17번 국도 → 압록 → 구례 구역 → 18번 국도 → 구례 IC에서 19번 국도 진입 → 냉천삼거리에서 좌회전(18번국도) → 마광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광주 광천터미널에서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구례 행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구례터미널까지 1시간30분이면 갈 수 있다. 구례터미널에서도 20분 간격으로 화엄사 가는 시내버스가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15분이다.


서울 용산역에서 철도를 이용할 경우에는 구례구역을 가는 전라선을 이용하면 된다. 무궁화호는 5시간10분, 새마을호는 4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 식당
지리산과 섬진강에 인접한 화엄사 일대는 먹거리가 풍부한 곳으로 특히 산채정식과 민물매운탕이 유명하다. 가는 곳곳마다 음식맛이 일품이어서 어느 곳이 잘한다고 단정키 어려울 정도이다.


화엄사 입구에만도 산채정식으로 유명한 청내식당, 산나물식당, 욕쟁이할머니집, 지리산식당 등이 있으며 한정식의 백화회관, 버섯전골의 강남가든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중 스위스관광호텔 옆에 위치한 그옛날산채식당은 지리산 욕쟁이 할매집으로 더욱 유명한 곳으로 50년이 넘는 전통과 맛을 자랑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넓직한 마루와 한지가 발라진 여닫이문이 보이고 그 안으로 방이 있다. 하지만 식당인데도 불구하고 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주방에서 한 상 가득 차려 2명이 한번에 들고 나오기 때문이다.


소박한 질그릇에 담겨 한 상 가득 채워지는 30여가지의 나물과 반찬은 입맛을 돋구는데 그만이다. 특히 철마다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해 말려두었다가 참기름에 볶아 나오는 산나물과 할머니의 정성과 연륜이 그대로 담긴 구수한 된장찌개는 입안을 행복하게 할 정도이다.


젖갈 맛이 어우러진 전라도식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등 다양한 김치도 맛볼 수 있다.
산채정식 1인분에 1만원이며 파전, 도토리묵 등과 함께 동동주도 즐길 수 있다. 문의 061-782-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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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박
화엄사 가는 길에는 수많은 모텔과 민박집들이 있다. 먼저 한화호텔과 리조트(061-782-2171)가 있으며 지리산 스위스관광호텔(061-783-0156), 월등파크호텔(061-782-0082) 등이 있다. 또한 지리산프린스관광펜션(061-783-4700)을 비롯해 마리모텔, 샤롯데모텔, 지리산워커힐호텔, 지리산파크모텔, 화엄각, 지리산사랑파크 등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이밖에도 구례군 마산면 일대에 수많은 민박시설들이 성업중이다.


▷ 여행 문의: 화엄사 종무소 061-783-7600, 구례군 문화관광과 061-780-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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