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국제 행사에서 신종인플루엔자 치료제에 대한 강제실시권 발동 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따라 대표적인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국내 제약사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주식시장에선 이번 이슈와 별 상관이 없거나 있더라도 미미한 연결고리를 가진 업체들까지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과열양상도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타미플루를 생산할 수 있는 회사로 알려진 업체는 에스텍파마ㆍ씨티씨바이오ㆍ삼진제약ㆍ대한뉴팜ㆍ한국유나이티드제약ㆍ경동제약ㆍLG생명과학ㆍ화일약품ㆍ한미약품ㆍ대웅제약ㆍ종근당ㆍ유한양행ㆍ일양약품 등이다.
◆강제실시권.. 길고도 험난한 길
타미플루는 길리어드와 로슈의 특허약물이다. 특허종료까지 타미플루를 만들어 파는 것은 불법이지만, 재난상황에서 특허를 무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시행하는 방법이 '강제실시'다.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타미플루나 백신 등을)공공재로 봐야 한다"며 "특허 보유 업체가 이익을 넘어 협조하는 게 제약회사의 본분"이란 의지를 지난 21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기까지 거쳐야 할 단계가 많아, 현 시점에서 그 실현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은 다소 성급해 보인다. 전 장관의 발언도 "최악의 경우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 이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으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우선 생산업체인 스위스의 '로슈'가 한국에 필요한 물량을 공급할 여력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공급에 차질이 없다면 강제실시권 발동의 명분도 없기 때문이다.
또하나 거쳐야 할 단계는 로슈가 이미 만들어 놓은 '판데믹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일이다. 이는 대유행 발생시 타미플루를 각 국가에서 스스로 생산해 사용할 수 있도록 2005년 로슈측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이에 따라 이미 인도의 복제약 회사 등이 로슈와 계약을 체결해 일부 국가에 타미플루 복제약을 공급하는 방안이 외신을 통해 발표된 바 있다. 이 방법으로도 한국 내 물량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야 강제실시권이 논의될 수 있다.
한국 역시 '판데믹 프로그램'에 포함된 국가다. 지난 2005년 로슈측은 현지 실사를 거쳐 유한양행을 최종 파트너로 선정한 바 있다.
유한양행과 로슈간 계약내용은 비밀준수 원칙에 따라 공개된 바 없으나, 최종 완제품 마지막 생산공정 직전까지의 기술이전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한국이 원하는 타미플루 물량을 로슈가 직접, 그리고 로슈와 계약을 체결한 복제약 업체가 공급하고, 그리고 유한양행까지 나서도 부족할 경우가 돼야 강제실시권 발동여부가 논의될 수 있다.
게다가 특허에 유난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로슈측이 또다른 '대안'을 고안해 내지 못한다는 전제도 필요하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타미플루 복제약 생산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국내 제약사들에게도 수혜가 돌아올 전망이다.
◆조류독감의 교훈
이같은 상황은 2005년 조류독감 유행 때와 거의 동일하다. 당시에도 국제사회는 로슈에게 특허포기를 압박했고, 강제실시권 논의가 거세지자 국내 제약사들이 서둘러 타미플루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검증절차 없이 '우리도 만들 수 있다'는 회사측 발표에 재미를 본 것은 해당 업체들의 주주들 뿐이었다. 실제 조류독감이 판데믹으로 이어지지 않고 가라앉자, 해당 회사들의 주가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또 보수적으로 볼 경우, 강제실시권이 시행된다 해도 그 수혜폭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전 인구의 5%에 해당하는 247만명분의 항바이러스제를 확보중인데, 연말까지 추가로 625억원을 들여 250만명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전인구 20%를 목표로 한다해도, 추가 수요분은 700여만명 분에 불과하다.
700여만명 분의 타미플루 확보에는 약 1700억원이 필요하지만, 로슈와 인도 복제약 업체, 유한양행이 공급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만 제한적으로 국내 복제약 업체들이 공급을 담당할 수 있다.
더욱이 250만명에 625억원이란 계산은 '타미플루'의 보험약가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국내 업체들이 복제약을 팔게 된다는 점 그리고 강제실시권 발동 시 정부구매가는 보험약가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점 등을 감안할 경우 수혜폭은 매우 제한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강제실시권이 실시된다 해도 복제약 업체들은 특허권자에게 로얄티를 지급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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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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