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마니아]마이클 잭슨, 아버지가 죽였다?

시계아이콘02분 49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글자크기

[마니아]마이클 잭슨, 아버지가 죽였다?
AD

[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소중하다. 시끌벅적한 광란의 파티도 어릴 때 동네축구만 못하고, 세계 최고급 셰프의 음식도 어릴 때 먹던 자장면만 못하며, 아무리 뜨거운 사랑도 어릴 때 첫사랑만큼 심장이 떨리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사라져도 기억만은 평생을 간다. 시민 찰스 포스터 케인이 중얼거렸던 '로즈버드'처럼 말이다.


◆ 다섯 살 꼬마, 아버지의 폭력

마이클 잭슨은 어린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영원히 어린이로 살았다. 어린이 잭슨이 아버지의 강요에 이끌려 탬버린을 들고 콩가를 두들기기 시작한 건 만 다섯 살 때였다. 소년은 제법 어른 가수들을 흉내내며 재능을 뽐냈다. 어린이의 목소리로 어른의 창법을 흉내내고 어른의 춤동작을 따라했다. 제임스 브라운의 그루브가 꼬마의 몸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잭슨의 아버지 조 잭슨은 꼬마 마이클의 재능을 간과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아들을 형제 밴드 잭슨5의 맨 앞에 세우고 각종 콘테스트에 내보냈으며, 잭슨5가 동네에서 유명세를 타자 연주 투어를 시작했다. 공연장은 대부분이 흑인 클럽이었고 그 중에는 스트립 클럽도 있었다.

[마니아]마이클 잭슨, 아버지가 죽였다? 어린 시절의 마이클 잭슨 [사진=유니버설뮤직]


마이클 잭슨은 자아가 형성되기 전부터 이미 어른들의 쇼비즈니스에서 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연습의 피로보다 힘든 건 허리띠를 들고 의자에 앉아 감시하는 아버지였다. 당시를 회고하며 그는 "아버지가 나타나면 모두 공포에 떨었고 죽을 만큼 무서웠다"고 말했다.


잭슨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타블로이드 '더 선'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잭슨의 전 피부과 주치의였던 아놀드 클라인의 동성 연인 폴 고랜슨은 "클라인이 말하길 잭슨은 아버지에게 '그곳'을 두 번 맞았는데 한 번은 아주 어릴 때 한쪽 발을 잡힌 채 거꾸로 매달려 맞은 것이었고 두 번째는 솔로앨범의 성과가 좋지 않았을 때였다"고 말했다.


고랜슨의 주장은 진위여부를 떠나 충격적이다. "잭슨은 '계집애 같은 녀석, 넌 불알도 필요없어'라는 아버지의 폭언을 들으며 울면서 계속 맞았다."


그는 이어 "클라인의 말에 따르면 그 사건 이후 잭슨의 고환에 문제가 생겨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잭슨은 정자를 만들어낼 수 없어서 클라인이 정자를 제공해 잭슨이 아이를 갖도록 도왔다"고 주장했다. 타블로이즈 '더 선'의 악명을 생각해봤을 때 제3자인 고랜스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들을 수는 없지만 완전한 거짓이라고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잭슨은 어릴 때 아버지가 자신을 '코쟁이(big nose)'라고 부르거나 못생겼다고 놀렸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비교적 잘생긴 외모였던 소년 잭슨은 아버지와 사촌형제들의 끊임 없는 놀림 속에서 열등감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성형수술에 대한 의구심이 떠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 "섹스, 죽도록 무서웠다"


마이클 잭슨의 어린 시절은 성적인 문제에서도 평범하지 않았다. 꼬마 잭슨은 형들과 공연 투어를 다니며 호텔에서 자기 일쑤였는데 종종 형들로부터 협박을 받아야 했다. 형이 여자를 데려오면 잠든 척하라는 것이었다.


잭슨은 자신에 관한 다큐멘터리 '리빙 위드 마이클 잭슨(Living with Michael Jackson)'(2003)에서 "공연을 다니면 형들과 방을 같이 썼는데 여자를 데려오기 전에 '어떤 일이 있어도 눈을 뜨지 말고 자는 척해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며 형이 같은 침실에서 섹스를 했느냐는 질문에 "가끔은 그랬다"고 답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까지 성경험이 없었다고 말했다. 첫 여자친구였던 여배우 테이텀 오닐이 자신을 성적으로 유혹하며 옷을 벗기려 해 "너무 무서워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말했다. 그는 그 순간이 "죽도록 무서웠다(scared to death)'고 회고했다. 오닐은 후에 이를 전면 부인했다.


잭슨은 동성의 또래 친구들이나 이성 친구들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는 어린 시절을 그는 갖지 못했다. 2001년 잭슨은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을 빼앗긴 것에 대해 "분노가 아닌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제가 놀이공원에 있거나 다른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하죠. '어린 시절에 저런 기회를 갖지 못했을거야'라고요. 전 어릴 때 정말 다른 아이들처럼 놀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외박하는 것도, 파티도, '할로윈' 놀이도 없었죠. 크리스마스도 명절도 없었어요. 그래서 잃어버린 것을 이렇게라도 보상받으려는 겁니다."


[마니아]마이클 잭슨, 아버지가 죽였다? 데뷔 초의 '잭슨5' (맨 앞이 마이클 잭슨)


◆ 마이클 잭슨, 외로운 피터팬


잭슨의 사후 '소아성애자'라는 주홍글씨는 대체로 사라졌다. 아이들을 끔찍히 사랑하던 그의 마음을 의심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잭슨을 아동성추행 혐의로 고발한 에반 챈들러의 아들은 "마이클은 나를 추행하지 않았으며 모든 게 아버지가 꾸민 짓"이라고 최근 폭로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의 쇼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았던 그는 거짓말을 일삼고 탐욕스런 어른들에 지쳤을지 모른다. 그에겐 음악과 어린이가 사랑의 전부였을 것이다. 슬픈 일은 그와 함께 지냈던 어린이들마저 그에게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LA타임스의 로버트 힐번은 1981년 잭슨이 23세 때 했던 인터뷰를 회고하며 "내가 만난 가장 연약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고 묘사했다. 힐번에 따르면 23세였던 잭슨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외로워요. 집에 있을 때도 외로워요. 방에 앉아 가끔 울곤 하죠. 친구를 만들기 너무 힘듭니다. 어떤 건 가족이나 형제들과 이야기할 수 없는 게 있잖아요. 누군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가끔 밤에 이웃을 돌아다녀요. 결국 그냥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죠."


마이클 잭슨의 직접적인 사인은 약물남용이다. 강력한 진통제와 항우울제를 복용할 정도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그의 인생이 행복했다 혹은 불행했다 단정짓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버지가 그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갔지만, 그는 반대로 아버지로 인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욕심이 그를 죽였을 것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반대로 대중이 그를 죽였다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심장의 마지막 박동을 느끼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의 '로즈버드'가 문득 궁금해진다.


[마니아]마이클 잭슨, 아버지가 죽였다? 마이클 잭슨 (1958~2009)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