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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가 만난 사람]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상대보다 한번 더치면 이기는 탁구, 직장도 인생도 마찬가지 원리 아닌가

"상대보다 한번 더치면 이기는게 탁구
직장도 인생도 마찬가지 원리 아닌가"

위기의 시대 헤쳐나갈 지혜를 말하다 - 황영기 KB금융지주회장

대담 = 권대우 아시아경제 대표이사회장


황영기 KB금융지주회장. 그는 분명 금융인이다. 이력서가 말해주듯 삼성증권사장, 우리금융회장, KB금융지주 회장 등 이력서만 놓고 보면 그는 금융계에서 여한 없는 역량을 보여줬고, 그곳에서 인생의 성공스토리를 써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승자의 대열에 서려면 뭔가 차별화해야 하는데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적들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판단을 해보게 된다. 튀는 경영, 성공에 이르는 과정이 그를 통하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에게는 조직원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다. 우리금융 회장 시절에는 1시간에 가까운 월례조회를 할 정도로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기면 살아남고 지면 무대에서 영원히 퇴출될 수밖에 없는 냉혹한 글로벌 경제의 싸움터에서 그의 인생노하우를 배워보면 어떨까?

대나무의 성장과정을 보며 모죽처럼 뻗어나갈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며, 즐겨 쓰는 검투사 단어에서 스스로 진화하기 위해 도전하되 어떤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해야 할까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황 회장과 만나자고 제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위기의 시대, 불확실의 시대에 그를 통해 좌초에 부딪힌 경제의 돌파구를 모색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장님을 만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것이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입니다. 술, 운동에서 품격이 있는 토론에 이르기까지 가릴 것이 없습니다. 팔방미인이라는 용어가 황 회장님 때문에 생겨난 것 같아요. 거기에다 집안일까지 잘 챙기는 모범가장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 같습니까?



▲모두가 아버지, 어머니 덕 아니겠습니까? 제일 고마운 것은 건강입니다. 지금까지 몸에 칼 한번 대본 적 없고 아파서 누워 본적이 없어요. 건강이란 게 사회생활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밑천인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술을 매우 잘 하셨습니다. 짊어지고 가지는 못했지만 마시고는 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피가 섞이지 않았을까요?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정신적, 신체적 DNA를 물려 받으셨네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평소의 엄격한 자기관리,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습관이 현재의 황 회장님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젊을 때 재벌회장의 통역을 맡을 정도로 영어실력이 뛰어났는데 어머니 뱃속에서 영어까지 배우고 태어난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렇게 보면 황회장님의 밑천은 타고난 천성이고 여기에 철저한 습관이 더해져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지금까지 살면서 영어 덕 참 많이 봤습니다. 영어 못했더라면 영국가서 공부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중학교 1,2학년 때였을 겁니다. 그때 영어선생님이 참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윤윤수 선생님이셨던가? 그분은 문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다 외워오라고 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영어를 통째로 외우고 큰 소리로 말하게 했습니다. 그 때 문법중심으로 배웠으면 지금의 영어실력이 보장됐을까요?

-외우기만 한다고 영어가 잘 되겠습니까? 나름대로 뼈를 깎는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나친 암기위주의 교육이 오늘의 교육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 측면도 있지 않을까요?

▲영어만은 다른 것 같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팝송이 한창 유행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저는 팝송에 미치다시피 했습니다. 200곡 정도는 2-3절까지 다 외웠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당시 많은 학생들이 끼고 다니던 참고서도 보지 않았습니다. 팝송을 많이 외우고 있으니 모의고사 성적도 좋았습니다. 이렇듯 저의 영어경쟁력은 팝송 외우기에서 시작됐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교육은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오늘 영어얘기 하려고 회장님 만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보니 개인이든, 국가든 경쟁력을 키우려면 언어가 이처럼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군요.

▲그럼요. 국내에서는 영어를 자꾸 이념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한심한 생각입니다. 그러다간 그동안 한국이 먹고 살던 수단을 중국한테 빼앗길 수 있습니다. 미국이 1920년대, 30년대, 40년대 제조업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 다 뺏기고 이젠 자동차까지 넘겨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도 제조업의 상당부분을 중국에 넘겨줄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럼 뭘 먹고 살아야 합니까. 서비스업입니다.
서비스업 제대로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입니다. 한국에 가면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통하는 나라로 인식돼야 합니다. 독일의 웬만한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영어, 불어 두 개정도는 합니다. 스위스도 3개정도는 합니다. 영어 가르치면 미국의 속국이 되는 것 같은 걱정을 해서 되겠습니까?
어학은 사치품이 아니라 외국을 들여다보는 창입니다. 말을 배우면 말만 배우면 그 나라의 문화도 배우고 지식도 배우지 않습니까? 우리가 동북아의 서비스 중심국이 되기 위한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저는 회장님의 검투사 기질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요즘처럼 국내외 경영환경이 어려운 시기에는 그런 기질과 근성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에 집중하기 위해 담배를 끊었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검투사가 되려면 상대방을 꿰뚫어보는 합리성, 빠른 의사결정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런 승부기질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중학교 다닐 때 꿈이 탁구선수였습니다. 동네 탁구장에서 주로 했는데 그때 예전에 선수출신이었던 탁구장 주인이 "너 잘한다. 좀 가르쳐 줄까"하며 기술을 전수해줬으니 그런 꿈을 키울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분이 살살 부추겨서 탁구천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탁구를 잘 하려면 서비스와 리시브의 규칙에 맞도록 공을 치면 되고 상대가 공격을 하면 잘 막아내면 됩니다. 공격을 할 수 있는 공이 오면 멋지게 때려서 성공시키면 됩니다.
이기려면 공을 퍼내면 안 되고 실수를 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기술을 순간적으로 사용해서 상대가 수비하기 힘든 곳으로 보내면 승자가 되지요.
상대가 강공을 못하게 공을 보내고 상대가 받아넘긴 공은 받기 힘든 곳으로 이리저리 빼거나 상대가 공격을 하면 실수를 할 때까지 받아넘기면 된다.

-어떻게 보면 승부사기질이 거기서 생긴 것 같기도 하네요. 사실 인생도 탁구경기 하듯 살면 될 것 같기도 하고....

▲남보다 한번만 더 치면 이깁니다. 상대방이 10번 칠 때 내가 11번 칠 수 있으면 이기는 경기가 탁구입니다. 탁구선수들 알통이 굉장히 좋습니다. 큰 운동하면 근육이 클 것 같지만 작은 운동이 근육을 많이 써서 더 많이 발달합니다. 지금의 건강과 일에 대한 열정이 그런 곳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화제를 옮겨보겠습니다. 97년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위기 때마다 은행의 역할이 도마위에 오르는 것 같습니다. 은행이 좀 더 제대로 역할을 해줬더라면 지금과 같은 위기는 오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좀 진정되어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금융시장의 질서가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뭘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해야 금융선진국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동안의 분위기는 똑똑한 시장이 알아서 하니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장도 엄청난 실수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손으로 소유가 돌아가는 국가자본주의 현상이 급속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금융 보호주의 기조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입장에선 매우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지금은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과거 미국과 유럽에서 신흥경제국으로 이동하며 미국 유럽 아시아라는 다자금융체제로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시아 금융강국 이기도한 우리나라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은행들이 너무 몸을 사린다는 지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은행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위기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기도 합니다만

▲중소기업들에게 "야, 돈도 없는데 그만하지"하면 기를 쓰고 달려듭니다. 마지막 상품 개발하고 있다, 내일이면 어음이 들어온다며 자기네 기업이 살수 있다는 열변을 토합니다. 그게 기업인입니다.
지금부도 직전에 이르는 기업이 아닌 이상 정부나 은행이 나서서 "너 보니까 체력이 약한 것 같은 너는 수술도 아깝다, 곧 바로 안락사하지" 이런 식으로 기업들한테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은행의 경우 톱10 대기업이 아니면 만의 하나 사고가 난다해도 은행이 커버할 수 있습니다. 부채비율이 워낙 낮기 때문입니다. 은행이 자기네 죽을까봐 손을 안 댄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정부의 역할과 은행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은행이 구조조정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고 또 그것이 결국은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들을 합니다.

▲은행이 옛날처럼 갑의 입장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을의 입장에 설 때도 많습니다. 그만큼 기업이 튼튼해 진 것입니다. 은행에 찾아와서 돈 빌려달라고 설설 기는 기업은 그만큼 위험한 경우가 많습니다. 은행에 와서 큰소리치면 그 기업은 괜찮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장은 똑똑한 것 같습니다. 우리정부가 같은 위기를 겪는 외국만큼 은행지원 하지 않았지만 큰 문제 없지 않습니까?
문제는 한계 중소기업입니다. 그런데 한계 중소기업은 어느 때나 있었습니다. 그런 논리에 정부가 지나치게 함몰돼 모든 기업을 살리려고 하면 자원배분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억울해서 눈물겨운 사연은 개별사항으로 해결하고 전체적인 논리로 보면 한계중소기업은 시장에서 정리되면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일자리 없는 젊은이들, 50대들입니다.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고 기업이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잠깐이지만 잠시 외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금융인의 길을 택했습니다. 회장님의 역량으로 봐서 정치를 해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것 같은데 왜 그 길을 마다했습니까?

▲정치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잠시 쉬면서 내 전공을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까, 남보다 나에게 있는 비교우위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정치에 입문, 그쪽 세상을 본적이 있으니 정치와 기업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치와 기업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우리사회가 한 단계 점프할 수 있을까요?

▲미국처럼 기업이 공개적으로 특정 정치인에 대해 지지선언하고 후원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우리같이 기업의 정치의 관계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상 투명하지도 못하고 유독 정치인에 대해서는 기업이 후원을 못하게 돼있습니다. 그렇게 절연시켜 놓다보니 기업과 정치인이 소 닭보듯 합니다. 그러면서 뒤로는 밥도 사고, 골프도 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의 신뢰수준이 문제입니다. 학부모와 선생님간의 가방뒤지기 촌지사건, 미네르바 사건, 장자연사건도 따지고 보면 우리사회의 신뢰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치와 기업과의 건강한 긴장관계가 필요한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협조받을 것은 받아야 하는데 그동안 불신의 골이 깊으니 문제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신뢰수준을 높이기 전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그만큼 많습니다.
사실 그동안 신뢰수준 회복에 앞서간 것은 기업들입니다. 기업들의 신뢰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검찰의 조사대상이 되고 국세청의 조사대상이 되지 않습니까? 여기에다 내부 고발자까지 있지 않습니까? 먹이사슬로 보면 기업이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 틀에 박힌 자녀교육관입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그런 고정관념으로는 더 이상 글로벌시대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자녀교육의 성공이라는 과녁을 명중시키려면 부모들도 이젠 새로운 발상으로 접근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도 저를 그렇게 키웠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기 싫은 것 하면 갈등도 생기고 스트레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애들이 무엇을 하려해도 "하지 말라"고 말린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해라. 그러다보면 다른 기회도 생긴다. 그리고 위험요소는 이런 게 있다"며 옆에서 코칭을 하는 정도입니다.
아들은 게임하고 싶어서 게임회사 가 있고 딸은 재미삼아 시켰는데 발레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만 해도 옵션이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일 좋은 게 공부 잘해서 안정된 직장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가 좋아졌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사회니까요. 근대사회의 최대 발명품이 주식회사란 말이 있듯이 제가 개발한 교육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새로운 기회가 나오게 되고 세계적인 인재도 발굴될 테니까요.

[프로필]

▲1952년 경북 영덕 출생 ▲서울고 ▲서울대 상대 무역학과 ▲영국 런던대 경제대학원졸 ▲미국 뱅커스 트러스트 서울지점 ▲삼성증권 사장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 ▲한나라당 선대위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 ▲법무법인 세종 고문 ▲ KB금융지주 회장(현)


정리 =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사진 = 윤동주 기자 doso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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