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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업계 '高手'만 살아남는다"

KT 이석채 회장 속도경영 눈길

원고 없이 인터뷰 등 튀는 행보
비리임직원 파면 초강수 대책도

'고수(高手)만이 살아남는다.'
국내 통신업계는 강호제현이 넘쳐나는 일종의 무림세계다. 절대강자의 패권을 쥐기위해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필살기로 무장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한판승부를 벼르는 각축장이다.

오는 6월초로 예정된 '통신공룡' 통합 KT의 출범 과정을 지켜보면서 SK텔레콤, LG텔레콤 등 경쟁사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목은 다름아닌 이석채 KT회장의 스피드 경영과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추진력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비리척결로 기강잡기

선공은 이미 시작됐다. 이 회장은 12일 협력사와의 리베이트 관행을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승부수를 던졌다.

이를 위해 100% 직영공사체제를 도입하고, 협력사를 2011년까지 현재의 절반수준으로 줄이기로 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협력사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임직원을 적발해 파면하겠다는 초강수도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이같은 구상은 이 회장이 지난 1월 서울고검 정성복 검사를 윤리경영실장(부사장)으로 영입할때부터 예견됐던 것이지만 3개월만에 혁신적인 윤리경영안으로 포장돼 세상에 공표되자 업계에서는 이석채식 속도경영에 다시한번 놀라고 있다.

남중수 전 KT 사장과 조영주 전 KTF 사장이 '납품 뒷돈'으로 구속 기소되면서 크게 실추된 KT의 이미지를 '투명경영' 업체로 탈바꿈한다는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KT 협력사를 비롯한 업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듯 하다. 하지만 '올것이 왔다'는 분위기속에서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짜기에 골몰하는 분위기다.

순발력에서 엿보이는 신속경영

손발이 느리면 순발력을 키우면 되고 앞서 가려면 체력을 올리면 된다. 하지만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최고경영자(CEO)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석채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KT참모진들은 회장의 동선 파악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이 회장이 워낙 '임기응변'에 강해 언제 어디서 '깜짝카드'를 내놓을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 1월 B언론과의 조찬강연에서 그룹 비서실과 홍보업무를 겸하고 있는 KT '현장경영' 팀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 회장은 이날 언론과 방송학회 관계자 등 수 백명이 모인 강연에서 '국내 IT산업의 컨버젼스(융합)와 KT의 역할'이라는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었다.

'현장경영'팀 가운데 스피치 라이터(speech writer)들은 이 행사의 원고를 만들면서 한달 가까이 야근을 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한다. 취임 초기인데다 이 회장의 꼼꼼한 성격때문에 꽤나 부담스러운 작업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날 이 회장은 모든 예측을 단번에 뒤집었다. 이 회장은 갑자기 청중을 향해 "원래 형식에 얽매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보니 지금부터 생생한 '이석채 스토리'를 들려주겠다"면서 "준비한 원고는 이메일로 보내드릴테니 따로 참고하시면 된다"고 했다는 전언이다. 이 회장의 순발력은 신속한 합병추진, 전광석화같은 조직개편 등으로 표면화됐다.

같은 날 몇 시간뒤 이 회장은 다시한번 내공을 발휘했다. A 방송과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앵커가 대본에도 없는 질문을 퍼붓자 현장경영팀원들은 당황해 어쩔줄 몰라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여유있게 맞받아치며 할 얘기를 다했다. 방송을 마친 뒤 방송국 스탭들은 이 회장이 취임 초기여서 어색해하거나 실수를 할 법도 한데 오히려 생방송의 묘미를 잘 살릴 정도로 순발력이 뛰어나 방송이 더욱 빛났다고 호평을 했다.

당초 녹화방송을 주장했던 KT홍보팀이 계면쩍어 했음은 물론이다.

이후 한달 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주선으로 주요 통신업계 CEO들이 오찬겸 한 식당에서 만났다. 최시중 위원장을 비롯해 정만원 SK텔레콤 사장과 정일재 LG텔레콤 사장은 관례대로 수행비서와 홍보관계자 등 2~4명을 대동하고 나왔다.

하지만 이 회장은 혼자 참석해 오히려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본인 차량도 식당 주차장이 아닌 인근 공터에 대기하도록 지시해 당혹스러웠다는 것이 비서의 말이다.

이를 자유분방함이나 야인기질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화두를 던져라

이 회장은 독서광으로도 유명하다. 바쁜 경영일선에서도 옆에 책을 끼고 산다. 이런 그가 취임하면서 임직원들에게 탐독을 권유한 책이 바로 '혁신의 새로운 시대(The New Age of Innovation)'다.

이 책은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 KT 임직원들은 이를 원서로 구입해 읽고 있다. 최근에는 KT경영연구소에서 요약본을 만들어 직원들간 콘텐츠를 공유하고 있다.

이 책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통신업계가 닮을 만한 미래비전이 빼곡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소비자의 요구, 행동에 대응하고 소비자의 기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미국 타이어업계의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이는 영국의 BT처럼 기존의 통신망에 새로운 서비스를 얹어 인터넷 네트워크 솔루션 업체로 나가겠다는 이 회장의 경영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책을 여러번 읽었다는 KT의 한 직원은 "증권가에서 한 통신업체가 조만간 금융업에 진출할 것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는데 이 책을 보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며 "통신업체가 갖고 있는 방대한 네트워크위에 고객의 금융 습관까지 접목한다면 고부가 가치의 마케팅 모델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풀이했다.

김진오 기자 jokim@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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