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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털(毛) 박사의 모험

시계아이콘01분 37초 소요

벌써 입춘. 봄처럼 따뜻한 털(毛) 박사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논에 모를 심듯이 스스로 자기 몸에다 모(毛)를 심었던 의사. 서울 강남 신사동에서 모발 클리닉을 운영하는 황성주(37) 박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의 몸에 머리털을 길렀던 부위는 머리 외에 다리 목 이마 등과 그리고 손바닥입니다. 머리털을 처음 곳곳에 심게 된 계기는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에서 레지던트로 일할 때였다고 합니다.

이식된 머리털이 곧 죽지 않을까 의심하는 환자들을 안심시키고 실상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용으로 100개를 심어 본 게 그 동기였습니다. 가히 ‘살신성모(殺身成毛)’의 경지에서 출발한 것이죠. 자기 몸에 이식했던 머리털의 연구 성과가 세계에서 인정받게 되기까지 오직 털의 길이와 굵기 변화에만 집착했습니다.


황 박사 연구 이전에 세계의 털 박사(?)들은, 몸의 어느 곳에 머리털을 심더라도 성장속도와 굵기가 변하지 않는다는 통설을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43년 동안 굳어진 그 가설을 한국에서 하루아침에 뒤집게 됩니다.

우선 그가 뒤통수에서 머리털을 뽑아 다리에 심어 본 몇 달 후, 머리에서보다 천천히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의 털을 다리에서 뽑아내어 목 뒤쪽에 심었더니, 성장속도가 머리털과 같이 다시 빨라지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같은 털이 심는 장소에 따라 성장속도가 변한다는 놀라운 사실. 그 연구를 미국 의학계가 인정하고, 미국 의과대학 교과서에 논문이 실렸을 때는 이미 황 박사의 몸 곳곳에 심은 머리털이 500여개가 넘었을 때였습니다.


그는 유전적으로 대머리 집안이라 언젠가는 자신도 그렇게 될 운명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많지 않은 머리카락을 뽑아 배양했던 전대미문의 털 애호가. 돈을 버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가 아닌 것을 황 박사는 온몸으로 세계에 증명한 것이죠.


유럽과 미국 피부학회에서 이 진기한 이식 털을 구경하려는 강연초청이 쇄도하고, 소문을 듣고 이식수술을 받으려는 외국인들도 많다고 합니다. 미세한 털 하나로 세계 1위가 되면 그게 바로 벤처기업. 제조공장은 자신의 팔, 다리, 배, 가슴, 손 등 곳곳에 널려 있고, 실험 연구 기자재로는 눈금이 정밀한 자와 전자현미경만 있으면 되겠죠. 그는 이미 세계의 대머리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털 박사가 되었습니다.


간호사가 8명 이상 달라붙어서 4~5시간동안 모낭을 분리해줘야 하는 이식수술은, 두피에 일일이 이식하기 위해 2000~3000개 정도의 모발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름대면 알만한 스타나 유명 운동선수들이 그런 시술과정을 참고 머리에서 빛을 잃었지만, 대신 빗을 사야 했습니다.


국내 탈모환자가 300만명이 넘고 탈모 시장이 수천억 규모가 된다니... 황 박사 몸의 털이 자라는 곳마다 신의 가호가 있겠지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거의 매일 뉴스에서 ‘소비위축’과 ‘불황’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들이 나오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외환위기 때도 오히려 매출이 증가했던 효자상품이 있었는데 라면과 두통약과 염색약이 문제의 3인방이란 통계를 보았습니다. 불황기를 넘기며 중산층은 식비를 줄여야 할 정도로 머리가 아팠고, 그 아픈 머리가 스트레스를 받아 더욱 흰머리가 늘어났으니 염색약의 매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겠지요. 당연히 탈모는 그런 환경에서 더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자나 깨나 털 조심, 빠진 털도 다시보자!”
각계각층에서 ‘긍정의 바이러스’를 퍼뜨리자는 목소리가 비등하는 요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털만 안 빠지고 잘 자라도 제법 행복한 인생 아닌가요.






시사평론가 김대우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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