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를 겪고 있는 여의도 증권가에 생존과 탈출의 엇갈린 행보을 걷는 두 명의 애널리스트가 있어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애널리스트가 한때 '증권가의 꽃'으로 불리던 것도 이젠 옛말. 현재의 자리에서 생존하거나 또 다른 생존 방법을 찾아 떠나는 것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
H증권 시황 담당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꿈꿔 왔던 영화감독에 입문하려고 증권사를 떠나기로 결정한 반면 다른 H증권 유통 담당 애널리스트는 불황을 헤쳐나가고자 사비까지 털어가며 문자 메시지 마케팅을 하고 있다.
난세의 증권가를 떠나려는 사람이나,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사람이나 각자 다른 길을 택했지만 둘 다 증권가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했다는 게 시장의 목소리다.
◆의지형 "살아 남아야죠!"
H증권 유통 담당 P애널리스트는 지난 2일 증권 담당 기자들에게 뜬금없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문자 메시지 한 통에는 CJ홈쇼핑의 목표주가를 5만8000원으로 상향 조정했고 '매수' 투자의견을 유지했다는 내용을 깔끔하게 담았다.
P애널리스트는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서 나만의 마케팅을 마련해야겠다는 판단 하에 펀드 매니저 900여명과 기자 150여명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적잖은 비용을 사비로 충당했다는 점이 그의 강력한 의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P애널리스트는 지난 1992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대신경제연구소와 교보증권, 한화증권 등을 거친 17년차 베테랑이다. 유통ㆍ섬유 등 소비재를 담당하며 알찬 정보를 투자자들에 제공하고 있다.
그는 "마케팅의 차원도 있지만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처음 증권업계에 발을 디딘 당시의 초심으로 되돌아가 고객들에게 보다 좋은 정보를 주고 싶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결단형 "꿈 찾아 떠나요~"
다른 H증권 K애널리스트는 현재 시황을 담당할 후임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개인적 관심사인 영화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증권가를 떠날 마음을 가진 것은 꽤 오래전이다.
하지만 증권업계가 경기 불황 속에 어려움을 겪는 최근에서야 김 애널리스트는 '증권가 엑소더스'를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그만큼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더이상 머물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주위 동료들은 꿈을 좇는 그에게 부러움의 시선도 보내고 있단다.
K애널리스트는 "개인적인 사항으로 아직까지 결정된 바 없다"며 구체적 언급을 꺼렸다.
1997년 굿모닝신한증권에 입사한 뒤 지난 2005년 한국투자증권으로 둥지를 옮긴 김 애널리스트는 시황 분야에 있어선 자타공인할 만한 전문가란 호평을 받아왔다. 증권가에선 꽤 알려진 유명세도 날렸다. 그렇지만 증권가의 현실은 그를 더이상 붙잡을 수 없었고, 그의 세컨드 라이프 시작을 마냥 바라보게 된 것이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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