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모래언덕이 유산이다, 공사 멈춰라'… 제주 이호에서 벌어진 갈등

제주도·제주시 "국가 생태 조사서 제외… 해안사구 아니다" 공식 확인
적법한 허가에도 뒷짐 진 행정당국… "원만한 합의" 원론적 입장만

제주시 이호동 375번지 일대 건축 공사 현장. 마을 측이 '해안사구 훼손'을 주장하며 내건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가운데,마을회에서 공사 중지 민원을 제기해 허가 받은 공사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박창원 기자.

제주시 이호동 일대의 적법한 건축 공사가 마을회의 '해안사구(모래언덕) 훼손' 민원으로 수개월째 중단된 가운데, 해당 부지가 국가 생태 조사에서 '사구가 아닌 땅'으로 확인됐음에도 관할 관청이 "민원 발생 시 공사 중지"라는 조건을 내세워 사태를 방관하고 있어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호동 375번지 부근의 사유지 건축 공사가 차질을 빚는 근본 원인은 제주시의 소극적인 행정에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제주도청·시청 "해안사구 아니다" 공식 확인

그동안 마을회와 일부 환경단체는 해당 부지를 '마을의 허파'이자 보전해야 할 해안사구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행정 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제주도청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2016년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이 전국의 해안사구를 전수조사해 도내 14개를 지정했지만, 이호동 부지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해안사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2022년 절대보전지역 지정 당시에도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제외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해안사구는 바다에서 모래가 공급돼 바람에 실려 퇴적돼야 형성된다. 그러나 해당 부지 앞은 대규모 매립지(이호랜드)와 4차선 도로가 가로막고 있어, 모래 공급 자체가 지리적으로 차단된 상태다.

제주시청 관계자 역시 "사구로 조사된 적은 없다"며 이를 시인했다.

마을회 관계자조차 통화에서 "4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사구 지정이 안 될 거란 건 우리도 안다"면서도 "이제라도 남은 사구를 지키기 위해 민원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실제 현장 취재 결과, 4차선 도로가 개설된 이후 마을 측이 사구 보전지역이라고 주장하는 곳과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인접 부지에는 이미 편의점과 카페 등이 버젓이 들어서 영업 중인 것으로 확인돼 형평성 논란도 더해지고 있다.

위성 지도로 본 갈등 부지(붉은 원 표시) 주변 현황. 부지 앞쪽으로 4차선 도로와 대규모 매립지(제주이호랜드)가 가로막고 있어, 사구 형성의 필수 요건인 '바다로부터의 모래 공급'이 지리적으로 차단돼 보여진다. 출처 네이버 위성지도.

 '민원 발생 시 공사 중지' 조건부 허가 논란

행정 당국이 사구가 아님을 알면서도 공사를 중단시킨 배경에는 제주시의 허가 조건에 있다.

제주시청 관계자는 해당 부지의 건축 및 도로점용 허가를 내주며 "민원이 발생하면 조정될 때까지 공사를 중지하라는 허가 조건이 나갔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법적 하자가 없는 정상적인 공사라도 주민이 반대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구조를 행정이 만든 셈이다.

이호동과 제주시는 "주민들의 물리적 반발이 강할 경우 즉각적인 행정 개입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며 사실상 갈등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건축주 A씨는 "분진이나 소음 문제로 공사를 중지하라면 이해하겠지만, 캠코에서 공매로 낙찰받은 사유지에 적법한 도로점용 허가까지 받았는데 무작정 멈추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 확산

행정 당국 스스로 보전 대상인 해안사구가 아님을 확인하고 적법한 건축 허가를 내주었음에도, 제주시는 "이른 시일 내에 조치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보이며 수개월째 갈등을 관망하고 있다.

보전지역이 아닌 사유지에 대한 정당한 건축 행위임이 확인된 만큼, 행정 당국이 민원을 이유로 사유재산권 침해를 묵인할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른 조속한 행정 집행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자체가 갈등 무마를 핑계로 적법한 공무집행을 미루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행정이 오히려 잘못된 떼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호남팀 호남취재본부 박창원 기자 capta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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