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균형발전, 집 짓는다고 끝이 아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을 맡아 분당·일산 등 5대 신도시 계획을 입안했던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2002년 '강북 개발 특별법' 제정을 주장했다. 민간이 주체가 된 산발적인 재개발로는 강남의 대체 주거지가 될 수 없으며 난개발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강북지역 중 자동차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을 1만~5만평씩 대규모 개발지구로 지정하자는 계획에 시장은 들썩였다.

같은 해 서울시장에 취임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강북 개발'을 자치법규로 담았다. 강북 지역에 대한 '시 예산 우선 배정'을 문서화하고 특혜로 내비칠 수 있는 혜택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24년이 지나 주택시장의 선택 논리와 투자 심리가 빚어낸 '강남권 똘똘한 한 채'는 강북 개발의 실패를 방증한다. '교육→수요→집값'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간과했으며 대단위 면적을 기반으로 재건축이 순환한 강남과 달리 주거 밀집지를 중심으로 한 강북 재개발의 더딘 속도는 격차를 더 벌어지게 만들었다. 이 기간 극과 극의 서울시장이 그렸던 강북의 모습도 방향을 달리하며 신뢰까지 잃었다.

지금의 서울시가 '강북 전성시대'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강북 균형발전 계획도 투입비에 비례한 단기간의 개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북권 표심을 얻기 위한 전략 정책이라는 해석까지 나와 정책 연속성도 보장받기 힘들다.

하지만 노후주거지 정비에만 집중했던 과거와 다른 접근 방식은 기대되는 점이 있다. 주택 공급 외 '균형발전'에 맞춘 생활 인프라 재설계에 방점이 찍혔다. 서울에서 아파트가 가장 밀집한 곳에는 국내 최초·최대 K팝 공연장과 인공지능(AI)·빅데이터 최대 산업거점이 조성되고, 지역 개발에 걸림돌로 지목됐던 강북 곳곳의 차량기지와 물류부지는 기업 유치와 연계한 생활형 공간으로 바뀐다.

균형발전을 막았던 요인부터 과감히 덜어낸 것도 과거와 다른 보폭이다. 강북지역의 동서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축이던 내부순환로와 북부간선도로의 지하화가 시작이다.

두 곳 모두 간선도로의 기능을 잃어버려 지금은 구조물 노후화에 따른 위험과 관리비 부담만 커지고 있다. 10년 넘게 3조원이 넘는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강북은 베드타운에서 벗어날 기회다. 만리장성같이 지역 연계를 차단했던 고가가 사라지면 공간은 사람이 머무는 곳으로 바뀐다.

결국 강북의 미래는 '집을 더 짓느냐'가 아니라 '살 이유를 만들 수 있느냐'에 있다. 주거 선호는 일상의 총합에서 만들어진다. 단순히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게 아닌 사람과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를 설계해야 실패를 답습하지 않는다. 교육, 일자리, 문화, 교통을 결합한 일상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또 한 번의 개발 실험으로 끝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시간이다. 선거 주기에 흔들리는 구호성 개발이 아닌, 사람이 머물고 아이를 키우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때 균형 발전은 시작된다. 다음 행정이 와도 기본 골격은 유지된다는 믿음이 쌓일 때 사람과 자본은 움직인다.

계획의 잦은 수정이나 명칭 변경보다 예산·제도·인허가의 일관된 집행도 중요하다. 단임 시장의 치적 사업이 아닌 10년, 20년을 내다보는 도시 비전으로 관리해야 한다.

지금의 강남도 도시계획 몇 번과 집값 상승만으로 자리잡힌 게 아니다. 도시의 위상을 쌓는 데는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서울이 선택해야 할 것은 또 하나의 구호가 아니라 긴 호흡의 실행이다.

사회부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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