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2026년, AI 이후의 노동은 어떻게 재설계되는가

수행을 넘어서 '판단의 구조'로 이동한 인간의 일

2026년 노동 시장은 지난 1년간의 기술 재편 흐름이 인간의 노동 가치로 직접 밀려오는 전환점에 서 있다. 2025년 기술 산업의 중심축이 알고리즘 경쟁에서 연산 인프라(Compute)로 이동했다면, 2026년은 그 여파가 노동 시장과 교육, 역량의 기준으로 본격 전이되는 해다. 기술 변화는 이제 산업의 효율을 넘어, 인간의 일이 어떤 방식으로 남고 바뀌는지를 묻고 있다.

2026년은 연산 인프라 중심으로 재편된 기술 흐름이 노동 시장으로 본격 확산되며, 인간의 일이 어떤 형태로 남고 가치가 어떻게 재정의될지를 가르는 전환점이다. 픽사베이 제공

생성형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특정 업무를 보조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기업들은 주요 의사결정용 보고서 작성과 데이터 분석, 코드 생성, 문서 검토까지 AI를 실무 구조에 직접 편입하기 시작했고, 이는 노동 시장에서 '직무'가 아니라 '업무 단위(Task)'가 재편되는 변화를 낳고 있다. 이 변화는 대규모 구조조정보다, 현장에서 먼저 체감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특정 산업이나 직군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무직과 전문직, 연구직과 창작 직군을 가리지 않고 '일의 구성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기술 유행이 아니라, 인간 노동의 정의가 다시 쓰이는 과정에 가깝다.

기술 변화, 이제 '인간의 일'로 이동

세계경제포럼(WEF)은 2025~2030년을 "AI와 자동화가 업무 구조를 본격적으로 재편하는 시기"로 규정하며, 전문가 직군 내부에서도 요구 역량이 빠르게 상향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컨설팅사들 역시 "2026년은 AI 활용 능력이 연봉과 경력의 핵심 변수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해"라고 진단한다.

이는 기술이 고도화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AI가 실제 업무에 쓰일 만큼 안정적이고 저렴해졌고,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과 오류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술 경쟁의 무게중심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누가 어떻게 일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기술 변화가 산업 구조를 흔들었다면, 이제는 인간의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이다.

AI에 먼저 대체되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업무 단위'

AI 도입 속도가 가장 빠른 영역은 정형화된 업무다. 보고서 초안 작성, 계약서·약관의 1차 검토, 기본 코딩, 데이터 정리, 콜센터 1차 응대, 리포트 요약 같은 업무는 이미 AI 처리 비중이 크게 늘었다. 이들 업무의 공통점은 판단 기준이 비교적 명확하고, 규칙과 패턴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동규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연구위원은 "AI로 인해 사라지는 것은 직업 전체가 아니라, 그 직업을 구성하는 업무 단위"라고 설명했다. 사례 연구와 현장 인터뷰를 종합하면, 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직무는 IT 개발 분야다. 시각·컴퓨터그래픽 디자인, 번역, 디지털 마케팅, 카피라이팅 등 콘텐츠 기반 직무와 일반 사무직, 연구직, 기자 직군에서도 업무 구조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AI는 직업 자체보다 업무 구조를 바꾸고 있으며, IT 개발을 시작으로 콘텐츠·사무·연구·기자 직군까지 변화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픽사베이 제공

기업들이 이를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 있다. 직무가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규칙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업무부터 먼저 분리돼 자동화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조용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재편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인간의 일, '수행'에서 '판단'으로 이동한다

AI가 효율과 속도를 담당한다면, 인간은 복잡성과 맥락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최근 주목받는 역할 군은 'AI 휴먼 레이어(Human Layer)'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그대로 실행하지 않고, 이를 해석·검증해 승인하거나 조정하는 판단 담당자다. 이들은 AI의 결과를 인간의 의도와 조직의 기준에 맞게 전달하고, AI가 다루기 어려운 윤리·감성·책임의 영역을 맡는다.

AI 협업 설계자와 AI 거버넌스·윤리 전문가, 휴먼 센싱 전문가는 모두 '정답을 빠르게 내는 일'이 아니라 '어떤 판단이 적절한지 결정하는 일'을 수행한다. 판단 노동은 맥락 변화와 책임 귀속이 수반되기 때문에 자동화가 가장 어려운 영역이다. AI 시대에 인간의 일은 점점 수행자에서 판단자로 재정의되고 있다.

AI 에이전트의 등장, 지시는 줄고 설계의 중요성은 커져

이 같은 변화는 사무실 풍경도 바꾸고 있다.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기술 총괄은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스스로 목표를 달성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하면서, 사람의 지시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본다. 과거처럼 수행 과정을 세세히 나열하기보다,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면 AI가 스스로 계획을 세워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AI 활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맥락(Context)'을 꼽는다. 어떤 정보가 새롭고, 무엇을 생략해야 하며, 조직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를 함께 제시해야 AI의 결과물이 실제 업무에 쓰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가 일의 속도를 높이는 도구라면, 인간은 여전히 일의 방향과 의미를 설계하는 존재로 남는다.

AI 인프라는 노동을 재배치하는 '보이지 않는 토대'

AI 확산과 함께 인간의 역할은 콘텐츠 제작에서 시스템 설계·운영으로 옮겨가고 있다. 픽사베이 제공

이 변화의 밑바탕에는 연산 인프라의 급격한 확장이 있다. 김종원 광주과학기술원(GIST) AI융합학과 교수는 AI 인프라를 단순한 IT 자산이 아니라 "미래 산업을 떠받치는 새로운 형태의 공장"이라고 정의했다.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AI 연산 자원이 결합하며 산업 전반의 의사결정 방식과 업무 구조가 함께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특히 "AI가 실제 산업과 현장으로 내려갈수록, 인간의 역할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서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지털 기반 설계·시뮬레이션과 자동화된 운영 환경이 확산하면서, 인간 노동 역시 AI 인프라 위에서 다시 정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교육과 역량의 기준이 함께 바뀐다

AI 튜터와 개인화 학습 도구 확산으로 지식 전달은 AI의 몫이 된다. 교육의 목적도 정해진 경로를 따르는 학습에서 벗어나, 원리를 이해하고 문제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기본 개념 설명과 연습 문제는 AI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반면, 교실과 대학은 질문을 만들고 의미를 연결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개념이 'AI 리터러시(AI literacy)'다. AI 리터러시는 단순히 AI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AI의 한계와 오류 가능성을 이해하고 결과를 해석·검증하며 책임 있게 활용하는 종합적 판단 역량을 의미한다.

김동규 연구위원은 AI 리터러시를 특정 직업의 전문 기술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직무에 요구되는 기초 직업능력으로 규정한다. 교육과 훈련의 목표 역시 기술 습득보다 판단 능력과 문제 재구성 능력의 축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AI와 함께 일할 준비가 격차를 만든다

2025년이 연산 자원과 전력 인프라 경쟁의 해였다면, 2026년은 그 경쟁이 노동 시장으로 전이되는 첫해다. 2030년 무렵, 이 변화는 AI와 함께 일할 준비가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로 분명히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기술은 인간의 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2026년, 우리는 AI 위로 올라설 것인지, AI 아래로 내려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산업IT부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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