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강나훔기자
정부는 고려아연의 대미 투자를 두고 비교적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한미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전략광물의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보, 경제안보 차원의 의미까지 언급된다. 종합적으로 보면 "잘한 투자"라는 평가다.
하지만 정부의 속내를 들여다볼 만한 여지는 있다. 표정 관리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관리', '점검', 그리고 '모니터링'이다. 최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기업의 해외투자 모니터링'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도 이런 기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해외투자는 원칙적으로 기업의 자율 영역이다. 정부 역시 그동안 같은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도 굳이 이 시점에 '모니터링'이라는 표현을 꺼내 든 것은, 대미 투자의 성격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 생산기지 이전이 아니라, 제련·소재처럼 산업의 뿌리에 해당하는 영역이 해외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이 다루는 사업은 더 민감하다. 아연·연·은은 물론 안티모니 등 핵심 비철금속과 전략광물은 이제 단순한 산업 원료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경제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취급된다. 미국이 이 분야를 자국 안보 전략의 일부로 끌어올린 상황에서, 한국의 대표 제련기업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장면을 우리 정부는 과연 마냥 환영만 할 수 있을까.
고려아연을 둘러싼 논란도 이런 시선을 키운 배경이다. 미국 제련소 투자 계획이 알려지자 국내에서는 산업 공동화 우려와 함께 투자 절차·지배구조를 둘러싼 잡음이 불거졌다. 회사는 한미 공급망 협력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하지만, 전략광물을 다루는 국내 대표 제련기업의 대규모 해외 이전이라는 점에서 논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제련 역량은 한 번 해외로 이전되면 되돌리기 어렵고, 기술과 인력, 연관 산업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정부는 '지원'보다는 '관리'라는 단어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해외투자 모니터링 발언은 현재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 기업들을 향한 경고일 수도 있다. "자율을 존중하되, 이제는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는 메시지다. 특히 핵심광물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고려아연이 정부의 모니터링 레이더에 가장 먼저 포착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번 논란은 특정 기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산업정책이 글로벌 진출과 국내 산업 기반 유지 사이에서 어떤 기준을 세울 것인지 묻는 시험대다. 고려아연은 그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진 기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