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기자
이민우기자
뉴욕=권해영특파원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투자 계획을 두고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 경영권 분쟁이 전환점을 맞게 됐다. 미국 정부는 해당 투자를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전략적 프로젝트라고 보고 있지만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 자체가 배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며 법적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려아연의 테네시 제련소 투자 결정을 "미국에 큰 승리(Big win for America)"라고 평가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며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산업 기반을 재건하며 해외 공급망에 대한 의존을 종식하기 위한 획기적인 핵심 광물 계약"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투자로 미국 국방부·상무부와 고려아연 합작법인은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연간 54만t 규모의 핵심광물 제련·가공 시설을 짓는다. 부지 면적은 약 65만㎡다. 총투자 금액은 운용·금융비용을 포함해 74억달러(약 11조원)로, 설비투자(CAPEX) 기준으로는 66억달러(약 10조원)다. 회사 계획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부지 조성과 기초 토목 공사를 시작해 2027년 착공에 들어가며 2029년부터 단계적 가동을 거쳐 2030년 1분기 100%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러트닉 장관이 고려아연 투자에 힘을 실으면서 관심은 영풍·MBK의 움직임이 쏠리고 있다. 앞서 영풍과 MBK는 미국 현지 투자와 관련해 "회사의 사업적 필요성보다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개인적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아연 주권'을 포기하는 국익에 반하는 결정"이라며 "미국 정부가 프로젝트가 아닌 고려아연 지분에 투자하는 것은 사업적 상식에 반하는 '경영권 방어용 백기사' 구조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자금 조달은 미국 정부 자금과 민간 투자, 금융 조달이 결합된 구조다. 미국 국방부와 투자자 자금으로 21억5000만달러가 투입되며 이 가운데 국방부의 조건부 투자는 14억달러 규모다.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법(CHIPS Acts)을 근거로 2억1000만달러를 지원한다. 나머지 자금은 현지 합작법인을 중심으로 대출과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을 통해 조달된다. 고려아연은 합작법인에 대한 자사 출자 지분이 9%대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풍·MBK 측은 러트닉 장관 발언에 대해 "미국 제련소가 자국 내에 건설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 고려아연 지분이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에 대해 동의하거나 평가한 것은 아니다"며 "미국의 평가와 별개로 기존 주주에게 불리한 증자 구조는 배임 소지가 있는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이번 투자 구조가 경영권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투자기구는 경영 참여나 배당을 목적으로 한 지분 투자가 아니라 전략광물 확보를 위한 공급망 차원의 금융 투자 성격이라는 설명이다. 공장 건설과 운영, 기술 통제 역시 고려아연이 설립하는 미국 현지법인을 통해 이뤄지며 미국이 확보하는 권리는 지분이 아닌 우선 구매·접근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임시 이사회를 열고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합작법인(JV)을 대상으로 신주 10.3%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하면서 영풍·MBK 연합의 지분율을 단숨에 따라잡게 됐다. 영풍·MBK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율은 현재 44.24%다. 최윤범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은 19.41%로, 한화 등 우호 지분을 모두 포함해도 32%대에 그친다. 유상증자가 성사될 경우 영풍·MBK 측 지분은 약 40% 수준으로 희석되고 최 회장 측 지분 역시 29%대로 낮아지지만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합작법인이 발행주식 총수의 10.3%를 확보하게 되면서 양측의 지분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년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 구성과 경영권을 둘러싼 구도 역시 다시 변수에 놓이게 된다.
MBK 측은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비롯해 이사회 결의 무효·취소 소송 등 법적 대응을 계속할 방침이다. 대표이사와 해당 안건에 찬성한 이사들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