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욱기자
최영찬기자
유병돈기자
"혼자서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세요."
고인이 생전에 복용하던 항우울제가 쌓여 있다. 박승욱 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7시30분 경북 영주시의 한 빌라. 유품정리업체 '카리스마'의 윤정섭 대표(50)가 굳게 닫혀있던 방문을 열고 익숙한 듯 창문부터 젖혔다. 이내 책상을 펴 간이 제단을 만들고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고인은 20대 여성 무연고자로 사망 일주일 만에 집주인에게 발견됐다. 경찰과 지자체가 고인의 신원을 확인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고인에게 남겨진 가족은 없었다.
이날 윤 대표는 옷, 고철 등을 분류해 마대로 옮겨 담는 방식으로 유품정리를 진행했다. 고인의 개인정보가 담긴 물건이나 서류 등은 따로 빼뒀다. 냉장고에는 고인이 생전 좋아했던 것으로 보이는 떡볶이, 치킨 등 배달 음식 용기가 덩그러니 있었고, 싱크대 서랍엔 햄 통조림과 즉석밥 등 간편식이 굴러다녔다. 직접 요리를 해먹은 흔적은 거의 없었다. 구석에서 발견된 식용유는 유통기한이 1년도 더 지나 있었다.
유품정리 업체 '카리스마' 윤정섭 대표(50)가 간이 제단을 만들어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박승욱 기자
고인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던 청년으로 보였다. 유품을 정리하며 발견한 앨범에는 교원자격증, 요양보호사자격증, 간호조무사자격증 등 각종 자격증이 즐비했다. 홀로 대학까지 졸업한 뒤에는 올해 초까지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했다. 앨범의 뒷장에는 어린이집 교사 시절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가 있었다. '피부가 하얗고 웃는 게 예쁜 선생님, 항상 고맙습니다'라는 내용이 눈에 밟혔다.
아이들에게 사랑받던 선생님이었지만, 정작 집에서는 철저히 혼자였다. 싱크대 선반에는 아침저녁으로 복용해야 하는 항우울제 봉투들이 쌓여 있었다. 윤 대표는 "홀로 떠난 청년들의 방을 치우다 보면 약속이나 한 듯 우울증 약이 나온다"며 "고인 역시 힘듦을 털어놓을 가족 하나 없이 홀로 고통을 삼켰을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박승욱 기자가 고인의 집에서 유품정리를 하고 있다.
최근 실업 급여를 받으며 구직 활동을 했던 흔적도 발견됐다. 책상 위 쪽지에는 '도전의식, 책임감, 학교 연계 교육 찾아보기' 등 재기를 위한 다짐이 빼곡했다.
베란다에는 얼마 전 널어둔 빨래가 그대로 걸려 있었는데, 대부분 잠옷이었다. 이후 고인의 옷을 정리하면서도 수십벌의 잠옷이 나오기도 했다. 정리 작업을 마무리할 무렵 '엄마 이름 : ○○○, 엄마 사는 곳 : ○○○'이 작은 글씨로 적힌 쪽지가 발견됐다. 주민등록상 가족이 '없음'으로 표기된 그녀가, 생전 어딘가에서 알아내 소중히 적어두었을 생모의 정보였다. 고인이 생전에 어머니를 만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고인이 생전 재기를 위해 적은 듯한 메모들. 박승욱 기자
전국 229곳 기초자치단체에 연령별 무연고 사망자를 확인한 결과 40대 미만 무연고 사망자는 2016년 68명에서 2020년 114명으로 급증해 줄곧 1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16명이, 올해는 1~5월까지 48명이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이 가운데 가족 등 연고자가 아예 없는 이들은 전체의 약 30% 수준이었다. 2021년은 32.9%(85명 중 28명), 2022년 34.0%(94명 중 32명), 2023년 31.1%(106명 중 33명), 지난해 29.6%(98명 중 29명), 올해 1~5월 35.7%(42명 중 15명)였다. 매년 수십명이 홀로 세상을 떠난 셈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