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진기자
"한국 경찰의 역사를 정리·집필하는 건 앞으로 경찰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이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한국경찰사편찬TF(태스크포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진영 경장(31)은 역대 '한국경찰사' 발간본을 꺼내 보여줬다. 1972년 첫 편찬 이후 10년 주기로 한 번씩 발간돼 온 이 책은 경찰 제도의 변천, 주요 사건, 시대별 현장 기록을 집대성한 사료집이다. 이 경장은 "흩어진 기록을 모아 정리하는 일이 경찰의 정체성을 세우는 기초"라고 설명했다
이진영 경장(한국경찰사편찬TF)이 한국경찰사편찬 집필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올해는 2015년부터 2024년까지의 경찰사가 발간되는 해다. 이를 집필하기 위해 경찰은 지난 3월 7명으로 구성된 전담 TF를 신설했다. 오는 12월 중으로 경찰사를 편찬한다는 목표다. 현재 사료 수집과 대국민 홍보를 병행하고 있다. 이 경장은 "이번 집필은 경찰 창설 8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의 발자취를 총정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직접 겪은 선배들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후배 세대에게 가장 큰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장은 경찰사가 젊은 경찰 세대에게 자긍심을 고취시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경장은 "경찰사가 경찰이 어떤 고비를 넘기며 국민 곁을 지켜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 된다면 후배 세대가 직업에 더 큰 애정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민들 역시 경찰이 걸어온 길을 알게 되면 지금의 경찰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영 경장(한국경찰사편찬TF)이 한국경찰사편찬 집필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이 경장은 경찰사를 보다 친근하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 경장의 아이디어로 올해 중앙경찰학교에서 '경찰 역사 골든벨'을 열어 2400명의 신임 경찰관이 경찰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또 KTV와 협업해 1950년대 대한뉴스 속 경찰 영상을 발굴해 재편집했으며, 인공지능(AI) 복원 관련 유튜브 채널 '그려 dream - 세상을 그리다'와 함께 '경찰 영웅' 5명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경찰 타임즈'를 제작하기 위해 '3대 경찰 가족'을 인터뷰했다. 1대 엄상윤 전 경찰관(1973년 입직·2004년 경북 문경경찰서 퇴직), 2대 엄대섭 경찰관(1997년 입직·현 경북경찰청 교통안전계 재직), 3대 엄은진 경찰관(2024년 입직·경북 청송경찰서 재직)의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세대를 잇는 경찰 가족의 생생한 기억 속에는 교대 근무 방식의 변화, 순찰차의 세대교체 등 시대별 현장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경찰 내부에서도 큰 공감을 얻었다. 이 경장은 "한 가정에서 세대를 이어 경찰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며 "경찰 역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6·25 참전 경찰관과 현직 경찰관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도 이 경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난 7월 6·25 참전용사를 주로 촬영해 온 사진작가 라미씨와 협업해 퇴직 경찰 9명과 현직 경찰 13명 총 22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최고령은 올해 100세를 맞은 전백규 전 경찰관이었다. 이 경장은 "경찰 선배님들이 '잊힌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우해줘 고맙다'고 말씀해주셨을 때 정말 뭉클했다"고 회상했다.
이진영 경장(한국경찰사편찬TF)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도중 6.25 전쟁 당시 근무한 경찰들과 현직 경찰들이 한자리에 모여 찍은 사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만족도 1000%"라고 단언했다. 그는 "경찰은 대민봉사부터 수사, 홍보, 외사까지 수십 가지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조직"이라며 "적성이 안 맞는다고 좌절할 필요 없이 다른 부서를 경험하면 된다"고 했다. 이어 "힘든 순간도 많지만 좋은 동료들을 만나 즐겁게 근무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 만족도를 잃지 않고, 후배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물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이 경장은 "경찰 역사를 편찬·홍보하는 경험을 통해, 단순히 고리타분한 방식이 아니라 국민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경찰을 알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창의적인 활동으로 경찰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높이고 싶다"고 말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