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윤기자
최근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기업들의 원자재 조달 비용과 해외투자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국내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요 대기업의 환율 영향' 조사 결과 2025년 사업계획 수립 시 환율을 현재 수준인 1450~1500원으로 적용한 기업은 전체의 11.1%에 불과했다고 9일 밝혔다.
기업들이 사업계획에 반영한 환율 범위는 1350~1400원(33.3%)이 가장 많았고, 이어 1300~1350원(29.6%), 1400~1450원(18.5%) 순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는 "기업들 입장에선 환율 예측과 실제 수준 간 괴리로 사업계획 수정과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초 비상계엄 사태로 1430원대까지 올랐다. 같은 달 18일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2025년 금리인하 횟수를 조정하겠다고 밝히자 1450원을 돌파했다. 이어 27일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표결 직후 1470원을 돌파했고 현재까지 1450원대 환율을 기록하고 있다.
조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환율과 관련해 '원자재 및 부품 조달비용 증가'(5점 만점에 3.7점)를 경영상 가장 어려움으로 꼽았다. 그다음으로 '해외투자 비용증가'(3.30점) '수입 결제 시 환차손 발생'(3.15점) '외화차입금 상환부담 증가'(2.93점) 순으로 나왔다.
대한상의는 "환율 상승은 전통적으로 수출 가격 하락을 통해 수출 주도형 경제에 유리한 효과를 가져왔으나, 최근 해외 현지생산 비중 증가와 환 헤지 결제 확대로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특히 대기업들은 기술과 품질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고품질 원자재 수입 비용 상승으로 영업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기업들은 현재 환율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는 잠재적 요소로 '국내 정치적 불안정 지속'(85.2%)과 '트럼프 정부의 무역정책 본격 개시’(74.1%)를 가장 많이 지목했다. '미국 금리 인하 지연 및 축소'(44.4%) '국내 외환관리 불균형'(22.2%) '한국 국가신용평가 하락'(22.2%) 등도 리스크 원인으로 꼽았다.
기업들은 환율 불안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 '외환 유동성 지원 확대'(63.0%·복수 응답)와 '긴급 외환시장 안정 조치 시행'(63.0%)을 가장 많이 요구했다. 이외에도 '수출입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37.0%) '원자재 공동구매 지원'(33.3%) '환율 변동 피해에 따른 세제 혜택 제공'(25.9%) '국산 부품 및 원자재 대체를 위한 연구개발(R&D) 지원 강화'(22.2%) '해외 투자처의 국내 전환 지원 사업'(3.7%)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은 자체적인 대응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원가 절감'(74.1%)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수입선 다변화'(37.0%) '환 헤지 확대'(33.3%) '국산화 추진'(22.2%) '거래대금을 달러 외 통화로 다변화'(18.5%) '해외투자 계획 조정 및 연기'(14.8%) '제품가격 인상을 통한 수익성 개선'(14.8%) '헤지 비율 축소를 통한 달러 보유 규모 확대'(3.7%) 등이 거론됐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하며 충격이 컸으나 여진은 비교적 짧았다"며 "이번 환율 상승은 경기 침체와 대내외 리스크가 중첩된 상황에서 발생해 그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 유출과 대외 신인도 하락 등 불안정한 환율 상승이 소위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처럼 확대하지 않도록 우리 경제에 대한 과감한 체질 개선과 구조적 전환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상의가 지난해 12월 27일~이달 6일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활용한 이메일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한 회사(제조 63%, 서비스·건설 37%)는 31개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