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정일웅기자
국내에서 대사이상 지방간 질환의 신약 개발에 실마리를 제공할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27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노화융합연구단 김미랑 박사 연구팀이 대사이상 지방간 질환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지방간이 지방간염으로 악화하면서 발생하는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대사이상 지방간 질환의 새로운 치료 타깃을 제시,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왼쪽부터) 연구책임자 김미랑 박사, 제1저자 아말 마그디 학생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지방간은 간에 과도하게 지방이 쌓이면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은 지방간 위험이 적을 것이라는 통념과 다르게 지방간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대한당뇨병학회 지방간연구회는 국내 20세 이상 성인 10명 중 4명이 지방간을 앓고 있다는 통계를 내놓기도 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지방간을 대사이상 지방간 질환으로 볼 수 있다. 이 질환은 흡연, 식습관, 운동 부족 등 환경적 요인과 관련이 깊다. 또 비만 및 당뇨, 심혈관계 질환, 신장 질환 등 만성질환을 유의하게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지난 3월 승인된 레즈디프라 외에는 현재 이렇다 할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신약 개발 연구가 시급한 이유다.
우선 연구팀은 후성유전에 주목했다. 후성유전은 생물체가 주요 DNA 서열을 변경하지 않고도 유전자 발현 등 기능의 변화로 환경 자극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후성유전의 핵심은 DNA 메틸화(DNA methylation)로 유전자 발현을 미세하게 조정해 세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적절한 발생 분화를 촉진해 세포의 성장과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DNA의 특정 부분에서 메틸화 패턴을 분석하면 건강과 질병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 외에도 생물학적 나이와 기대 수명 추정이 가능해 주목받는다.
이에 착안해 연구팀은 서울시보라매병원과 대사이상 지방간 질환 환자의 간 조직에서 DNA를 추출하고, DNA 메틸화 변화를 분석했다. 이 결과 간 섬유증이 보체 시스템(complement system) 유전자의 과메틸화나 저메틸화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보체는 혈액 안에 존재하는 단백질 집합체며, 보체 시스템은 선천성 면역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외부에서 침입하는 병원체를 직접 공격해 파괴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선 보체가 면역반응을 넘어 염증 해소, 세포 사멸, 혈관 생성, 상처 치유, 줄기세포 활성화, 조직 복구 등 생리 과정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발표됐다.
가령 연구팀이 환자 106명의 생검 표본을 분석했을 때 지방간염 샘플에서는 DNA 메틸화와 보체 유전자 발현의 반비례 경향이 두드러졌다. 277개 DMP(Differentially methylated positions) 중 35개는 비례했지만 143개는 보체 유전자 발현과 역상관 관계를 보인 것이다.
김미랑 박사는 “이번 연구는 대사이상 지방간 질환 진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보체 시스템 유전자의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처음 밝혀낸 것에 의의가 있다”며 “이는 대사이상 지방간 질환 진행의 핵심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표적 치료기술을 개발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 개인기초연구사업 및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 NST 융합연구단 사업, 생명연 주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