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담기자
아버지의 지인에게 성폭행당한 이후 정신연령이 4살로 퇴행했다가 결국 사망한 20대 여성의 비극이 재조명돼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4살이 된 24살 - 흩어진 증언과 다이어리'라는 주제로 승무원을 꿈꾸던 대학 졸업생 A씨의 사연을 다뤘다.
A씨 가족에 따르면 A씨가 피해 사실을 고백한 건 지난 2021년 11월이었다. 늦둥이 외동딸이던 A씨는 어릴 때부터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랐던 아버지의 후배 B씨로부터 성폭행당했다고 털어놨다. 집에 놀러 온 B씨는 피곤하다며 잠시 쉬어가겠다고 말했고, 심심하고 잠이 오지 않는다며 A씨를 방으로 데려갔다는 것이었다.
A씨 어머니는 "딸이 소리를 지르다가 베란다에서 서서 대소변을 봤다"고 주장했다. 깜짝 놀란 부모는 B씨를 돌려보내고 A씨를 진정시켰다. A씨는 운전면허 주행 연습을 시켜주던 B씨로부터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했고, 조금 전에도 방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A씨 부모는 곧바로 B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A씨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했다. 부모를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고, 멍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이는 등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A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4~5살 수준으로 인지능력이 퇴행했고, 결국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러나 B씨는 A씨를 강제로 모텔로 데려갔거나, 강압적으로 성행위가 이뤄진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A씨가 사건 1년여 전 다른 건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과거 있던 정신질환이 공교롭게 같은 시기 악화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A씨의 진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A씨는 지난해 8월 스물넷의 나이로 사망했다. 정신과병원에서 퇴원한 후 부모의 지극정성으로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는 듯했으나 지난해 6월 우연히 마트에서 마주친 B씨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A씨의 사망으로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지 못하던 검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딸의 기억이 가까스로 돌아올 때면 어떻게든 녹음을 해뒀다는 부모의 노력과 유품 정리 과정에서 발견된 일기장, 1장 반 분량의 자필 메모, 피해자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통해 B씨의 범죄 사실을 밝혀냈고, 그를 법정에 세우게 됐다.
한편 대전지검 논산지청은 지난 6월 강간치상, 강제추행 치상, 사자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B씨를 구속기소 했고,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