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원대로 뽑아도, 휴학 처리해도…의대 수업 정상화 요원'

서울대發 의대 집단휴학, 타 대학 확산 가능성↑
학생들 복귀 '골든타임' 지나…내년 대책 서둘러야
3일 용산서 의평원 압박 반대 결의대회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학생들이 집단으로 낸 휴학계를 전격 처리하면서 다른 의대로도 휴학 승인이 확산할지 주목된다. 교육부가 곧바로 서울대에 대한 고강도 감사에 착수하는 등 강력 대응을 예고했지만, 전체 의대 가운데 대학 총장이 아닌 의대 학장이 휴학을 승인할 수 있는 곳이 절반가량인 만큼 적지 않은 의대가 연달아 휴학을 처리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에선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이미 7개월 이상 이어져 올해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어려워진 만큼, 현실적으로 내년 2024학년도 입학생과 2025학년도 신입생 7600여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듣게 되는 상황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휴학 승인은 정상적 절차…정부와 충돌 아냐"

3일 의료계와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가 지난달 30일 의대생 700여명의 1학기 휴학 신청을 일괄 승인한 것은 지금 당장 1학기 수업을 듣지 않은 학생들이 돌아오더라도 내년 2월까지 남은 4~5개월 만에 일 년치 과정을 모두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은 "서울 의대는 휴학 승인을 더 이상 늦추면 학생들이 전원 유급되기 때문에 주임교수회의에서 휴학 승인을 의결했다"며 "정부 방침에 충돌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대학 자율성에 따라 정상적인 절차와 과정에 따라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의대 역시 이미 지난 5월 교수회의에서 정상적인 의학 교육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휴학 승인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교육부의 의대생 휴학 및 유급 불가 방침에 막혀 최종 결정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한 사립 의대 관계자는 "서울대가 첫 사례가 된 만큼 의대 학장이 휴학 승인 권한을 위임받은 다른 대학도 학생들의 휴학을 승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다만 대학 총장이 승인해야 하는 대학의 경우 아무래도 교육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서울대 감사 결과와 다른 대학들의 동향을 지켜보며 (휴학 승인) 타이밍을 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가 올해 2월 의대 증원 방침을 발표하자 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동맹 휴학계를 제출했고, 교육부는 집단 휴학을 허가할 수 없다며 1학기 성적 마감 기한을 학년 말로 바꾸는 등 수업 복귀를 유도해 왔다. 하지만 서울대를 포함한 40개 의대들이 모두 정상적인 수업을 하지 못한 만큼 이제는 학생들의 집단 유급이나 등록금 거부에 따른 제적 처리 등을 결정해야 할 시점이 임박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서울의대 휴학 승인' 취소할 수 있을까?

교육부는 여전히 동맹 휴학은 안 되며, 지난 7월 마련한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학생들이 복귀만 한다면 유급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전날엔 40개 의대에 '학사 운영 관련 협조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내 집단휴학 확산도 단속하고 나섰다. 공문에선 "집단행동의 하나로 이뤄지는 '동맹휴학'은 휴학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며 "향후 대규모 휴학 허가 등이 이뤄지는 경우 대학의 의사결정 구조 및 과정, 향후 복귀 상황을 고려한 교육과정 운영 준비 사항 등에 대해 점검 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학교가 학사 등과 관련해 법령을 위반하거나 학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총장에게 시정·변경을 명할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위반 행위를 취소·정지하거나 학생모집 정지, 정원 감축까지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서울대 의대와 같은 사례에 대해 교육부가 직접 휴학 취소 명령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학가의 판단이다. 휴학과 관련한 최종 권한은 기본적으로 각 대학 총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전국의대교수협의회, 대한의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도 공동 입장문을 통해 "서울대 의대의 결정은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정상적인 학습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하기 위해 내린 정의롭고 정당한 결정"이라며 "정부가 학생들의 자유 의사에 의한 휴학을 승인하지 않고 교육받지 않은 학생을 진급시키려는 것이야말로 대학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라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수들은 이어 "오히려 교과과정 이수가 안 된 상태에서 의대생들을 진급시키는 대학을 감사하고 징계하는 게 상식인데, 상식을 따른 의대에 현지 감사 등 엄정 대처한다는 것은 반교육적 행태"라며 "다른 39개 의과대학의 학장, 총장도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휴학 신청을 승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의대 신입생 2.5배…의평원 무력화 시도도

일각에선 이번 의대생 집단 휴학이 확산할 경우 1990년대 한의대 집단 유급 사태 때처럼 이듬해 입학 정원이 감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대학들은 유급이 아닌 휴학인 만큼 각 의대에 배정된 내년 신입생 선발 규모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2025학년도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따라 이미 대학별 증원 규모가 확정됐고 수시모집 등 입시 일정도 시작된 만큼 다른 변화가 있을 경우 수험생들의 크게 혼란을 겪을 것이란 설명이다.

과거 1993년 정부가 약국에서도 한약을 조제·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반발해 전국 한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면서 3000여명이 집단 유급하자 교육부는 9개 한의대의 1994학년도 입학정원을 30% 감축한 바 있다. 정해진 인원을 그대로 모집할 경우 정상 수업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이유였다. 1996년에도 약사들에게 한약 조제사 면허를 주는 데 반발하며 한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1000명 이상 유급됐는데, 교육부는 1997학년도 대입에서 대학별로 20~30%씩 모집정원을 줄였다.

정부는 의대를 평가·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도 압박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의대 증원과 관련, 의평원의 주요변화 평가 계획을 교육부가 심의한 이후 수정·보완을 권고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지난달 말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엔 의평원이 의대 불인증 판정의 1년 유예를 의무화하고, 의평원에 대한 교육부 지정 취소 시 기존 의대의 인증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와 전국의대교수협의회는 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의평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의과대학 교수 결의대회'를 연다. 교수들은 "의학 교육의 파행을 가져오게 될 교육부 조치에 교수들이 침묵하고 눈을 감는다면 학생 교육 포기를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우리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정부의 의평원 무력화 시도에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 교육 시스템 공백, 회복까지 오래 걸릴 것"

정부는 의대생들의 수업 복귀 마지 노선을 기존 9월에서 다시 11월로 미룬 상황이다. 의대 학부 수업을 오전과 오후로 나눠 진행하고 보강과 야간수업 등까지 하면 15~20주 안에 두 학기(30주)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2일 기준으로 전국 의대 40곳의 재적인원 1만9374명 중 2학기 등록을 마친 학생은 653명(3.4%)에 불과했다. 현실적으로 휴학이나 유급을 피할 다른 방법도 마땅치 않은 셈이다.

이에 학생들의 휴학을 승인할 경우 당장 내년에 신규 의사 3000여명을 배출하지 못하고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및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수급도 차질을 빚게 된다. 또 의대 예과 1학년 학생들은 올해 입학생(3058명)과 내년 신입생(4567명)을 합쳐 7600여명이 한꺼번에, 최소 6년간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내년 의대 수업이 재개돼 2024학번 학생들이 복귀하더라도 이번엔 2025학번 학생들이 집단 휴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의대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기존보다 학생 수가 2~3배 많아지는데 대학은 시설 확충이나 교수 충원 등 실질적인 수업 준비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며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제대로 된 수업이나 실습을 받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실력이 부족한 의사를 양산해 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과도한 당직과 수술, 외래진료 등에 내몰린 의대 교수들도 피로가 한계에 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지금 이대로는 증원된 규모만큼 신입생을 뽑아도, 의대 재학생들을 단체로 휴학 처리해도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는 힘들다"며 "생명을 다루기에 더 고강도로, 정교하게 운영돼야 할 의사 교육 시스템에 한 해 공백이 생긴 만큼 그 후유증은 더 크고 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중기벤처부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바이오중기벤처부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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