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은주기자
정부가 세대 간 형평성과 재정 안정성에 방점을 둔 국민연금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다.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감소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논의돼 온 모수 개혁안을 넘어서 근본적인 재정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개혁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젊은 세대는 덜 내고, 곧 연금을 받는 중장년층은 부담을 더 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세대 간 형평성에 치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대통령실과 정부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세대별로 차등화해 인상하고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같은 국민연금 개혁안은 윤 대통령이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로 예상되는 국정 브리핑에서 직접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새롭게 구상하는 개혁안은 재정 안정화에 초점이 맞혀져 있다. 장래에 지속해서 연금을 납부해야 하는 세대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세대 간 보험료율 인상 속도에 차등을 주는 방안이 포함될 전망이다. 예를 들어 보험료율을 13~15% 인상하기로 결정할 경우 장년층과 청년층이 해당 보험료율을 적용받는 시기를 달리 적용하는 것이다. 청년층은 매년 0.5%포인트씩 인상하고 장년층은 매년 1%포인트씩 인상하는 방식이다.
연금 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동 안정화 장치도 도입한다. 기금 운용 수익률, 기대여명, 출산율 등에 따라 기금이 고갈될 상황이 닥치면 자동으로 납부액을 올리고 수급액을 줄이는 방식을 추진하는 것이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해야 하는 모수 개혁이 필요할 때마다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금 소진 우려에 빠르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민연금의 출산 크레디트 인정 시점을 대폭 앞당기는 내용도 개혁안에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출산 크레디트는 출산 장려를 위해 국가가 출산 기간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현행 크레디트 제도는 2008년 1월 이후 둘째 이상 자녀를 낳은 가입자가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시점에 둘째 자녀는 가입 기간을 12개월 더해주고, 셋째부터는 자녀 1인당 18개월을 추가해준다. 연금 수령 시점인 63세 이후(현재 기준)에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해주는 혜택을 받는 것이다.
정부는 크레디트 적용 시점을 출산 직후로 대폭 앞당겨 적용하는 방안으로 바꾸기로 했다. 출산 기간 근로자가 내는 보험료는 정부가 국고로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둘째 자녀부터 인정해주던 크레디트를 첫째 자녀부터 인정해 주는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군 복무자를 위한 ‘군 복무 크레디트’도 확대한다. 현재는 군 복무 기간 중 6개월까지만 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해줬으나, 앞으로는 군 복무 기간 전체를 연금 가입 기간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런 내용의 연금개혁안을 준비하는 건 모수 개혁안 중심의 개혁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의 제5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2041년부터 국민연금은 적자로 돌아서고 2055년이면 국민연금 기금은 소진된다. 5년 전 재정 추계 때보다 소진 시점은 2년 빨라졌고, 적자 전환 시점은 1년 앞당겨졌다.
이에 따라 여야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보험료율을 13%까지로 인상하는 데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은 44%와 45%를 놓고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다만 여야가 소득대체율에 합의했더라도 소진 시점을 7~8년 늦추는 데 불과했다. 대통령실은 이런 모수 개혁안만으로는 장기적인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가 준비 중인 개혁안으로는 기금 소진 시점을 30년 정도 늦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윤 대통령은 곧 있을 국정브리핑에서 이런 내용의 큰 틀을 밝히되 구체적인 수치까지는 담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