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선기자
광저우에 사는 샹야오한 씨는 인공지능(AI) 관련 회사 수십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치열한 취업 경쟁에 면접 기회조차 잡기 어려웠다. 그는 고민 끝에 이력서를 지하철 광고판에 게재했다. 닷새가 지난 후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는 400건 이상의 친구 신청이 쏟아졌다. 또 회사 50여곳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중국 청년들이 지하철 광고판에 이력서를 띄우는 등 대중을 향한 자기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광고판을 통해 결혼기념일이나 졸업, 생일 등 기념일을 스스로 축하하기도 한다.
소후닷컴 등 중국 매체는 지하철 광고판에 이력서를 올리는 청년들의 행동에 주목하며 이 같은 '개인 표현' 방식이 새로운 MZ세대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광저우 뿐 아니라 베이징, 허페이, 항저우, 난징 등 다른 도시 지하철역에도 청년들의 자기 홍보가 확산하는 추세다.
청년들이 구인·구직 사이트 대신 지하철 광고판을 통해 많은 사람 앞에 본인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이어지고 있는 심각한 취업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중국 구인·구직 사이트 자오핀채용이 지난 5월에 발표한 '2024년 대학생 취업률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중국 일반학부대학 석·박사 졸업생의 취업률은 33.2%에 불과하다. 지난해보다 17%포인트 낮아졌다. 일반대학 학부 졸업생의 취업률도 43.9%로 50%가 채 되지 못한다.
중국 경제는 현재 성장 속도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중국의 올해 2분기 경제 성장률은 4.7%로 낮아졌다. 작년 3분기 4.9%, 4분기 5.2%, 올해 1분기 5.3% 등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세를 이어오다 올해 2분기에 다시 성장률이 낮아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게 최우선 순위라고 말할 정도로 청년들의 취업난은 중국 경제에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다.
샹 씨는 이력서에 AI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담았다. 하지만 이력서를 광고판에 게재하면서 AI 회사 외에도 AI 교육 강사, 보험 중개, 인터넷 라이브 방송 등 다양한 회사의 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샹 씨는 "인터뷰, SNS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고, 많은 회사의 면접을 봤다"며 지하철 광고를 통해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고 했다.
허페이에 사는 구직자 딩즈밍(31)씨도 구직활동에 지하철 광고판을 이용했다. 올해 2월 정리해고된 그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반응이 없자 모두가 볼 수 있는 지하철 광고판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이후 상하이, 쑤저우, 윈난 등에 위치한 회사에서 면접 연락을 받았다. 특히 그는 SNS를 통해 많은 응원을 받았다면서 "이력서를 분석해주는 분도 만났고, 같은 취업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고 말했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지하철 광고가 젊은이들의 자아를 드러내는 창구이자 구직활동을 하는 새로운 무대가 됐다고 전한다. 또 이런 추세에 대해 "젊은이들의 창의성과 용기가 담긴 시도"라면서 "청년들에게 더 많은 구직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활력과 창의성을 불어넣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