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기자
대한민국 국회의 대표이자 입법부의 수장 역할을 하는 국회의장의 중립성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후보들이 연일 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협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다.
현재 민주당 내 국회의장 후보군은 추미애 당선인, 조정식·정성호·우원식 의원 등 4파전으로 요약되는 분위기다. 국회의장 중립성 논란을 시작한 건 추미애 당선인이다. 추 당선인은 지난 11일 한 라디오에서 "대파가 좌파도 우파도 아니듯, 국회의장도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혁 입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장으로서 힘을 실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실제 추 당선인은 이어 "지난 국회를 보면 서로 절충점을 찾으라는 이유로 각종 개혁 입법이 좌초되거나 또는 의장의 손에 의해 알맹이가 빠져버리는 등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6선에 오른 조정식 의원은 보다 노골적으로 국회의장의 중립보다 '명심(明心. 이재명 대표의 마음)'을 우위에 두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조 의원은 지난 22일 CBS 라디오에서 "이재명 대표, 당과 호흡을 잘 맞추는 사람이 국회의장이 될 때 제대로 싸우고, 성과를 만들 때 국회를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했다.
친명 핵심 인물인 정성호 의원은 다음날인 23일 같은 라디오에 출연해 급기야 "의장의 중립이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정 의원은 또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민주주의 원리인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협치 난항에 주요 법안 통과가 어려워질 경우 다수당인 민주당에 힘을 싣겠다는 것이다. 우원식 의원 역시 전날 출마 선언문에서 "국회법이 규정한 중립의 협소함도 넘어서겠다"고 했다.
의장 후보들이 잇따라 정치적 중립 의무를 경시하는 발언을 내놓자 정치권 안팎에선 비판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박지원 전남 목포 국회의원 당선인은 전날 라디오에 출연해 "법 정신이 국회의장의 중립성이며, 이것을 강조해주는 것이 정치"라며 "나는 민주당에서 나왔으니까 민주당 편만 들 거야'라는 건 정치가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조응천 개혁신당 최고위원 역시 "민주당 경선 후보들이 국가 의전서열 제2위인 국회의장의 위상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아시아경제 통화에서 "국회의장은 국회법에서 중립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고, 그래야만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커나갈 수 있는 것"이라며 "후보들이 드러내놓고 한쪽 편을 들겠다는 발언은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 반(反)헌법적 망언이라고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