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미국 경제가 성장을 지속하는 '노랜딩(no landing·무착륙) 시나리오가 부상하면서 기준금리 인하가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에 '킹달러(달러 강세)'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시사하고, 중동 불안으로 안전자산인 달러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달러 랠리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16일(현지시간) 오후 1시27분 현재 블룸버그 달러 현물지수는 1266.08을 기록해 지난 9일(1240.78달러) 이후 5거래일 만에 2%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2월 이후 14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견조한 미 노동시장이 소비를 뒷받침하며 고물가, 고금리가 장기화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달러 강세로 이어지고 있다. 전날 발표된 3월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7% 늘어나 전망치(0.4%)를 크게 상회했다. 시장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시점이 더욱 뒤로 밀릴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크리스 터너 ING 그룹 NV 통화전략 헤드는 "현재 달러 강세 추세에 맞서 싸우는 건 매우 어렵다"며 "달러 지수가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인 1280선을 재돌파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달러 가치는 지난 5일 동안 스웨덴, 호주 통화 대비 크게 상승했다. 아시아에선 한국, 인도네시아 통화와 비교해 오름폭이 특히 컸다.
Fed의 금리 인하 시점은 늦춰질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BOE)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조만간 금리 인하에 착수하면 달러 강세 현상이 장기화 될 가능성도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이날 "인플레이션 둔화에 좀 더 자신감을 갖게 되고 우리의 기대에 맞게 (물가가) 움직이며 큰 충격이 없다면 제약적인 통화정책을 완화해야 하는 순간을 향해 가게 될 것"이라고 밝혀 조만간 금리 인하가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마켓의 마이클 멧캘프 거시 전략 헤드는 "(3월 미 소매판매) 지표의 놀라움은 결국 금리 방향이 갈라질 것이란 생각을 굳게 했다"며 "여름께 유럽에서는 경제 전반에 걸쳐 금리가 내려가겠지만 미국에선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HSBC 자산운용의 조 리틀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다른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Fed가 현재 정책을 더 오래 유지할 경우 글로벌 금리 인하 사이클은 뒤죽박죽이 될 것"이라며 "이는 통화 변동성이 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가 향후 몇개월 내 가장 큰 변동성을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가운데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그룹 고문은 Fed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는 달러 추가 강세로 이어지게 된다.
엘-에리언 고문은 "Fed가 금리를 올릴 위험은 낮지만 가능성이 제로(0)는 아니다"라며 "인플레이션이 매우 많이 악화할 경우 금리를 올릴 수 있다. 이는 지역은행 위기와 시장에 모든 종류의 충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동 내 지정학적 불안도 피난처인 달러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확전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對) 이란 보복 자제를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 방침을 시사하면서 중동 긴장 고조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