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진기자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설치된 부산 평화의 소녀상이 다시 한번 수난을 당했다. 수년 전부터 소녀상을 위협하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지만 이를 처벌할 근거는 아직 마련되지 않으면서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5시 30분께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노역 노동자상에 30대 남성이 '철거'라고 적힌 검정 비닐봉지를 씌웠다. 봉지 위로 빨간 글씨로 '철거'라고 적은 마스크도 붙어있었다.
이 남성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제지됐으며, 봉지 등은 경찰이 수거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부산 평화의 소녀상이 수난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소녀상에 자전거를 철근 자물쇠로 묶어놓았고, 이전에는 소녀상에 '박정희'라고 적힌 노란색 천과 염주, 빨간 주머니가 걸린 나무막대기를 놓고 가기도 했다.
이보다 전인 2017년에는 소녀상 인근에 '언제까지 일본을 미워할 것인가' 등이 적힌 종이가 붙은 폐화분을 테이프로 고정해 놓거나 소녀상 얼굴에 파란색 페인트를 칠한 자국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민단체는 이와 같은 행동들을 극우 성향을 띤 이들이 소녀상을 모욕하거나 비하할 목적으로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을 위협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어 소녀상 훼손 시도들은 단순 제지에 그치고 있다.
최근 검정 봉지를 씌운 사건 역시 경찰은 당초 재물손괴나 모욕죄 혐의 등에 대한 법적 검토를 하고 있으나, 이와 같은 혐의를 적용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물손괴는 소녀상의 효용을 해쳐야 하고,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명예 감정을 지닌 사람을 상대로 저질러야 적용할 수 있는 범죄라 이를 적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소녀상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주체인 지방자치단체도 이와 같은 이유로 훼손 시도 행위를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는 2021년 소녀상이 잇달아 위협받자 '평화의 소녀상 관리 계획'을 수립해 소녀상 관리 주체를 시, 동구, 시민단체로 정했다.
이 계획은 시와 동구가 소녀상을 수시로 관리하고 점검하고, 소녀상을 훼손할 시 건립 주체인 시민단체가 고발 등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계획에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부산시 관계자는 "소녀상은 시민단체에 소유권이 있다"며 "시 소유의 공공 조형물이 아니기 때문에 시에서 주도적으로 조형물을 훼손할 시 과태료 등 행정처분을 내린다는 조항을 조례에 넣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 설립된 소녀상을 보호하기 위해, 소녀상을 훼손하는 이들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부산겨레하나 관계자는 "최근 전국적으로 극우 단체에서 소녀상을 훼손하는 등 난동을 부리고 있다"며 "이에 대해 전국에서 공동으로 사례를 수집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접근금지 등 어떻게 하면 이들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을지 대응책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