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기자
유럽연합(EU)이 20일(현지시간) 러시아 동결 자산의 운용 수익금을 우크라이나 군사 기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EU 집행위원회와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이날 27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이사회에 연간 25억∼30억 유로(약 3조6000억∼4조4000억원)에 달하는 동결자산 운용 수익금을 우크라이나 지원금으로 활용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집행위가 언급한 수익금은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EU 중앙예탁기관(CSD)이 운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2차 수익'을 말한다. 현재 EU 내에 동결된 2100억유로(약 305조원) 규모의 러시아 자산은 대부분 벨기에에 있는 예탁기관 유로클리어가 보유·운용하고 있다. 2차 수익은 이렇게 묶인 돈을 유로클리어가 재투자하는 과정에서 얻은 예상 밖 수익인 셈이다. EU는 이를 '횡재 수입'이라고 표현한다.
EU는 연간 30억유로에 육박하는 운용 수익 중 약 90%를 '유럽평화기금'(EPF)으로 이전해 우크라이나 무기 구매 대금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나머지 10%는 우크라이나 복구·재건 비용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러시아와의 소송 준비금 및 운영비도 일부 남겨둘 예정이다.
EU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승인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면, 오는 7월에 첫 번째 수익 이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다루는 건 유럽 중앙예탁기관이 얻은 운용 수익금이므로,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 돈에 대한 권리가 전혀 없다"며 "이 제안과 관련해 국제법상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EU는 100만유로(약 14억원) 이상의 러시아 자산을 보유한 역내 모든 중앙예탁기관이 수익금을 원금과 분리해 별도 회계로 관리하도록 하는 규정을 지난달 도입하기도 했다. 이날 제안도 2022년부터 발생한 이자가 아닌, 새 규정 도입 이후 창출된 수익에만 적용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같은 구상이 실현되려면 27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헝가리 등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반대하고 있고,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어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오는 21일 EU 정상회의에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러시아는 "전례 없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EU의 구상이 "직접적인 약탈이자 절도 행위"라면서 해당 계획 강행 시 엄정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데니스 슈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완전히 몰수하거나 다른 용도로 이전해야 한다"며 "침략자가 자신이 초래한 파괴에 대해 막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효과적 선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