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기자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의 수도가 갱단에게 대부분 장악돼 무법천지가 됐다.
16일(현지시간) 미국 CNN, CBS 방송 등 외신은 “유엔은 갱단이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80%를 장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주 최빈국으로 꼽히는 아이티는 최근 수년간 갱단 연합체인 G9, 지-펩(G-Pep) 등의 분쟁으로 치안이 악화했다. 특히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숙소에서 암살당한 이후 선거가 치러지지 않으면서, 갱단 폭력에 따른 치안 악화와 빈곤 속에 행정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황이다.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되기 직전에 임명된 아리엘 앙리 총리는 원래 지난달 7일 사임하기로 했지만, 선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계속 집권했다. 이에 갱단들은 앙리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갱단은 앙리 총리가 케냐 방문으로 자리를 비운 지난달 29일부터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을 시작했다.
폭동 직후 아이티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지난 8일 대통령궁 인근에서도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폭력 사태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거리에 총에 맞아 숨진 시신이 널브러져 있지만, 갱단이 막고 있어 아무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유혈사태가 계속되자 결국 앙리 총리는 지난 11일 해외에서 사임을 발표했다.
현재 포르토프랭스에서는 매일 경찰과 갱단 간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주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도로는 텅 빈 상태다. 도시 외곽으로 가는 도로나 항구로 통하는 길은 갱단에 의해 막혔고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도 폐쇄됐다. 주요 식료품점에서는 식품이 동났고, 주유소에서는 연료가 거의 바닥난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은 혈액 부족으로 비상이 걸렸다.
이에 미국은 군용 헬기를 급파해 현지 주재 대사관 직원 일부를 철수시켰다. 아이티 현지에 주재하던 유럽연합(EU) 대표단과 독일 대사 등도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떠났다. 다만 미 국무부는 “아이티 주재 대사관이 인원이 줄어든 상태로 제한된 업무를 하면서 계속 열려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아이티에 있는 자국민을 대피시키기 위해 전세기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유엔은 이번 사태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약 1만5000명이 집을 잃었다고 밝혔다. CNN은 “현재 아이티의 인구 절반에 달하는 약 550만명이 인도주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보도했다.
한편 최근 폭력 사태를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G9의 두목 지미 셰리지에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아이티 국민은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개입에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