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이어 도매물가인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지난달 예상보다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라스트 마일(last mile·목표에 이르기 전 최종 구간)'이 쉽지 않은 것으로 거듭 확인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하 신중론을 재확인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끈질긴 인플레이션에 국채 금리가 급등하며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 노동부는 2월 PPI가 전월 대비 0.6%, 전년 대비 1.6%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치(각각 0.3%·1.1%)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며, 지난 1월 상승률(0.3%·1.0%)도 상회한다. 특히 연간 상승폭 1.6%는 5개월 만에 최대 수준이기도 하다.
상품 가격이 1.2% 오르며 PPI 상승분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휘발유 가격이 6.8% 뛰는 등 에너지 가격은 총 4.4% 올랐다. 여행·숙박 서비스 비용이 3.8% 오르며 서비스 가격은 0.3% 상승했다.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료품을 제외해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 PPI도 전월 대비 0.3%, 전년 대비 2.0% 올라 이 또한 시장 예상치(0.2%·1.9%)를 넘어섰다. 전월에는 각각 0.5%, 2%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도매물가인 PPI는 시차를 두고 소매물가인 CPI에 영향을 준다. 지난 12일 발표된 CPI에 이어 PPI까지 시장 전망치를 상회하면서 오는 19~20일 열리는 FOMC에서 Fed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2월 CPI는 전년 대비 3.2% 올라 전문가 전망치(3.1%)와 1월 상승폭(3.1%)을 모두 상회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Fed가 오는 6월 FOMC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이상 인하할 가능성을 62.8% 반영하고 있다. 하루 전 65.2%에서 소폭 하락했다.
모건스탠리 이-트레이드의 크리스 라킨 트레이딩 매니징 디렉터는 "지금까지 시장은 고집스러운 인플레이션과 신중한 Fed에 대한 우려를 과소평가해왔다"고 진단했다.
이번 2월 PPI 상승으로 오는 29일 발표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도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지난달 근원 PCE 물가지수가 전월 대비 0.3~0.4% 상승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끈질긴 인플레이션으로 Fed가 금리 인하에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국채 금리는 강세다. 글로벌 채권 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10bp(1bp=0.01%포인트) 상승한 4.29%, 2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7bp 오른 4.69% 선에서 움직이는 중이다.
맥쿼리의 티어리 위즈먼 글로벌 외환·금리 전략가는 "국채 금리가 계속 높아지고, 시장에 더 큰 하락이 있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둘 다 그렇다는 것이 내 답"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날 함께 발표된 2월 소매판매 증가율은 예상치를 하회해 경기 지표가 엇갈렸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2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6% 증가했다. 시장 전망치(0.8%)를 밑도는 속도로 소비가 늘어났다. 자동차를 제외한 소매판매는 0.3% 증가했다. 지난 1월 소매판매 증가폭은 전월 대비 0.8% 둔화에서 1.1% 감소로 하향 조정됐다. 당초 전망보다 가계 지출 여력이 크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와 관련해 "어떤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일부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불안에 눈썹을 치켜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2월 PPI가 시장 전망을 상회하며 국채 금리가 뛰자 증시는 하락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블루칩 중심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37.66포인트(0.35%) 하락한 3만8905.66에 거래를 마감했다.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는 14.83포인트(0.29%) 내린 5150.48, 나스닥지수는 49.24포인트(0.3%) 밀린 1만6128.53에 장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