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진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조기 피벗((pivot·방향 전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도 연내 금리 인하 문을 열어둠에 따라 한미 양국의 피벗 시점에 시장의 촉각이 세워지고 있다. 양국 모두 인플레이션 완화 지속에 대한 확신을 강조하는 만큼 금리 인하 시점은 '라스트마일(목표 물가 달성까지의 최종 구간)'의 길이에 달릴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1일 유상대 부총재 주재로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에 따른 국내 금융·외환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연준은 이날 정책금리를 시장 예상대로 동결(5.25~5.50%)했고, 이에 따라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2%포인트를 유지했다. 유 부총재는 "연준이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 결정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향후 발표되는 주요 경제지표에 따라 시장의 변동성이 수시로 확대될 수 있음에 유의해 국내외 금융·외환시장 상황을 계속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회의 직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고 경로는 불확실하다"면서 "3월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직전 FOMC 회의가 있었던 지난 12월에는 금리 인하 시점을 논의했다고 깜짝 언급하는 바람에 시장에서는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가 만발했는데 이번에는 이 같은 기대를 억누른 셈이다.
한은 뉴욕사무소도 이날 오전 현지 정보 보고서를 통해 "정책결정문에서 금리 인하를 위해 인플레이션의 목표치 접근에 대한 더 큰 확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며 "시장에서는 정책결정문과 기자회견에서 정책금리 조기인하 기대를 배척한 점을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책결정문에서 '긴축 편향' 문구가 사라졌고, 파월 의장이 올해 중 금리 인하 시작이 적절하다는 게 연준 내 컨센서스라고 밝힌 만큼 이번 FOMC는 금리인하 사전 정비작업 성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립적 수준의 회의 결과에 환율도 크게 영향받지 않는 모습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0.4원 오른 1335원 개장한 뒤 장 초반 보합권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에 한미 금리 역전 폭이 더 벌어질 가능성은 줄어든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연준과 한은이 모두 금리를 '언제 내리느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결국 향후 1~2개월 내 발표될 물가 안정과 고용지표 둔화 등의 추가 확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우 라스트마일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 보며 2분기 금리 인하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 연준이 꼭 물가 상승률 2%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 2%대로 궤도진입이 확인되는 것을 원한다고 밝혔다"며 "지난해 12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이 2.9%로 2%대에 진입한 상황에서 추가 둔화가 확인될 경우 미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설 공산은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박성우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도 5월 인하 전망을 유지하며 "계속되는 노동시장 수급 정상화, 주거비 상승률 하락에 따른 디스인플레이션 환경은 긴 호흡에서 연준이 중립 수준까지 정책금리를 인하하도록 만들어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 한은도 따라 내리겠지만 관건은 물가 둔화 확신이다. 한은이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은 없다고 판단했으나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못 박은 데다 라스트마일 리스크가 잔존한다는 경고성 보고서까지 낸 만큼 물가 경로를 신중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시장의 섣부른 기대를 진정하려는 차원일 뿐 하반기께 금리 인하를 시작하는 데 무리는 없어 보인다는 게 시장의 컨센서스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근원 물가 상승률도 떨어지는 추세이고 한은이 예측하는 경로를 벗어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큰 변수가 없는 한 올해 말 내지 내년 초에 물가 안정 목표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