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령기자
호남 출신 40대. 김가람 국민의힘 최고위원에 대한 수식어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집권여당 최고위원 자리를 꿰찬 그는 ‘세대와 지역의 통합 메신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호남의 소외감을 덜어주겠다고 공언한 뒤 전남 영광 등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다만 ‘세대·호남 교두보’라는 김 최고위원의 역할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한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9일 개최된 국민의힘 최고위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된 투표에서 전국위원 828명 중 539명(65.10%)이 참여한 결과, 김 최고위원이 총 381표(70.7%)로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김 최고위원은 2025년 3월까지 최고위원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광주에서 태어난 김 최고위원은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호남에서 나온 인물이다. 국내 최초로 스페인 생햄 ‘하몽’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가로 한국청년회의소(한국JC) 중앙회장을 맡기도 했다. 사업체를 운영하고, 체계적인 조직을 이끌어 본 경험을 스스로도 ‘강점’으로 내세운다.
정치권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 시작됐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광주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기초의원에 출마한 지인의 아버지 선거운동을 도우면서다. 보수정당 목소리를 처음 접한 그는 본인이 추구하는 이념과 새누리당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생각했고, 이후 10년 동안 호남에서 꾸준히 정당 활동을 해왔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윤석열 캠프 전남도당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청년기획위원을 맡기도 했다. 지난 3·8 전당대회에서는 청년 최고위원 후보로 나섰다 고배를 마셨으나, 청년대변인으로 발탁돼 당 활동을 이어왔다.
김 최고위원은 수락연설 당시 “당내 제 역할이라고 한다면, 20·30과 50·60을 잇는 그런 40대로서의 역할을,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를 잇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질의응답에서 그는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호남 국민"이라며 ”(광주·전남에) 국민의힘 소속 기초단체장, 국회의원이 한 분도 없다는 점을 잊지 않고 발로 뛰는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 같은 공약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최고위원 당선 이후 가장 처음 방문한 곳은 전남 영광군이다. 최고위원은 굴비와 천일염 등 영광 특산품을 판매하는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현장의 모습을 지난 19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 담아 전달했다. 김 최고위원은 “영광 주민들은 영광굴비와 천일염이 지금처럼 사랑받지 못할까 걱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23일에는 전남 광양시로 내려갈 계획이다. 김 최고위원은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호남 지역 기초단체가 41개인데 10곳이 무소속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도 연결고리가 부족한 곳들”이라며 “무소속인 곳을 먼저 가겠지만, 다음 달부터는 체계적으로 지역을 정해서 일주일에 두세 곳도 가려고 생각 중”이라고 설명했다.
광주 숙원사업으로 꼽히는 복합쇼핑몰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12일 최고위원회의에 처음 참석한 날 그는 “우리 당이 제시했던 광주 복합쇼핑몰은 신세계의 ‘스타필드 광주’, 현대백화점의 ‘더현대 광주’, 롯데의 ‘제3롯데월드’ 구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며 “시민들의 요구가 흔들림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당 안팎에선 김 최고위원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40대 초반 청년인데다, 민간단체에서 생활을 했고 기업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관료 혹은 법조인 중심의 정치를 벗어나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한 당협위원장은 “김 최고위원 스스로 두 개의 편견과 싸우고 있는데 하나는 ‘광주에서 국민의힘으로 정치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본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민의힘 내에서 호남 정치인에 대해 주류가 아니라고 한다’는 것”이라며 “끊임없이 이런 편견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호남에서 보수정당이 진일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대하게 되고, 김 최고위원이 호남에서 있을 변화의 주춧돌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최고위원 한 사람이 호남 출신 사람으로 채워졌다고 해서 교두보가 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현역 의원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목소리에 힘이 실릴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초선 의원도 “김 최고위원이 당 내부 시스템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것 같고, 지난번 전당대회에서 떨어졌는데 이번에 들어가면서 최고위 무게감이 좀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대감과 우려감을 김 최고위원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상황이다. 김 최고위원은 “‘이 친구가 소신껏 일을 할 수 있을지’ 등 생각하실 것 같은데 스스로 잘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라며 “호남 지역을 다 돌고 나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호남분들이 많이 사는 경기도 접전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평론가인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김 최고위원을 향해 “이제부터 지도부를 움직여서 진정성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민주당과 국민의힘 관계에서 실제 협치와 대화가 이뤄지도록 해 ‘달빛동맹’과 같은 사업을 서둘러 추진하는 등 가시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